제주도에서 1년…우도

제주도에서 1년…우도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열여덟 번째

기사승인 2019-11-16 00:00:00
성산항에서 우도에 가는 배는 통상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15분 정도 소요된다.

제주도 생활 다섯 달째에 접어들었다. 1년 일정으로 오면서 머물 집을 정한 뒤 여러 가지를 고려해 전입신고를 했다. 제주도엔 자동차 소유자의 차고지증명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제도이기도 하고 생경한 제도이기도 해서 가볍게 생각했다가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성산일출봉과 우도는 제주 동부지역의 어느 오름에서나 보인다. 오름에서는 마치 모자처럼 보였는데 우도행 배에서 바라보니 얼핏 물속에 머리를 넣고 있는 뿔 둘 가진 코뿔소처럼 보였다.

제주도에 적응하기에 마음이 바빠 두어 달 가까이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차고지확보명령서’가 배달되었다. ‘자동차등록판 영치’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에 주차장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는 관계로 관련 서류에 집 주인의 도장 날인 받아 제출하니 며칠 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차고지증명이 승인되었다’고 알려왔다.

제주도에 차를 가지고와 주소 이전을 하고 생활하고자 하면 이사하고자 하는 집에 주차장이 확보되어 있는지, 차고지증명 서류 작성 시 주차장 사용에 관해 집 주인 또는 다른 주민들의 동의에 문제는 없는지를 꼭 확인해 보아야 한다.

우도에 들어온 젊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 삼륜차나, 전기 또는 페달 자전거, 스쿠터 등을 빌려 이동하기 때문에 해안도로는 늘 붐빈다. 우도 안에서 운행하는 노선버스를 증차해 이동의 편리성을 강화하면 우도 관광이 조금 더 쾌적해질 듯하다.

그를 7년 만에 지하철 승강장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 가는 방향이 달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거기 있었고 그도 거기 있었다. 그리고 눈길이 마주쳤다. 만날 사람은 어디서든 만난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연이라 하나보다. 처음 만난 때는 20대의 삶을 시작할 때였고 다시 만났을 때는 30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도에 도착해 서쪽 해안길을 걸으며 보는 바다와 한라산과 오름이 어울린 풍경은 일품이다.

대통령이 죽고, 광주에서 험한 소식이 들려오고, 삼청교육생들이 연병장에서 뒹굴며 흙먼지를 일으킬 때 그는 군종병이었고 나는 행정병이었다. 2년 쯤 한 울타리 안에서 생활했던 인연이었다. 거의 7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목사가 되어 있었고 나는 뒤늦게 대학을 졸업하고 아등바등 세상을 헤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후 가끔 소식을 주고받다가 내가 인제대학교백병원에 근무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을 때 그가 나를 만나러 왔다.

큰 돌을 쌓아 담을 두른 해녀불턱은 해녀들의 탈의실이었다. 물에 들어가기 전 모여 물질 준비를 하고,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고, 정보를 교환하거나 물질을 가르치는 등 해녀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했다. 지금은 현대식 목욕시설을 갖춘 해녀의 집이 곳곳에 세워지면서 불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날 그에게 좋은 저녁을 한 끼 사고 싶었다. 참치횟집에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흘렀다. 그가 ‘그룹홈’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아들딸처럼 잘 보살피며 키우는 거지?”
“그렇지.”
“몇 명 데리고 있어?”
“아들만 7명.”
“그럼 1녀8남이군. 사모가 고생 많겠네. 그런데 왜 아들만 데려와?”
“딸들을 데려가는 그룹홈은 많은데 아들들은 어렵다고 잘 안 데려가.”
그날 그에게 저녁으로 참치회 산 것이 미안했다. 지금도 미안하다. 아내와 아홉 아이들 생각에 그 회 한 점 한 점 목 넘김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목사다.

드라마 ‘인어공주’를 촬영했다는 우도 삼양동 해녀탈의장에서 해녀들이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공장에 다니며 적은 월급을 쪼개고 쪼개 힘들게 살고 있던 아직은 어린 근로자들에게 제 방을 내주고 단칸방에 살기도 하고, 가난한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 하나 둘 돌보기도 했더랬다. 이제는 아홉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었단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문제가 쉽지 않다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음속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늘 그에게 미안했다.

우도 북쪽 끝이 가까워지면서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랑쉬오름이 맨 앞 가운데의 해안 가까이 있는 지미봉을 오른쪽으로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우도 서쪽의 해안 길에서는 어디에서든 바다건너 보이는 한라산과 오름의 모습이 아련하다.

숲길 걷는 거리가 5 킬로미터에서 10 킬로미터로 늘어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올레에 오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에 우도에 들어갔다. 올레 1-1 코스인 우도 올레는 10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여서 이틀 전에 걸었던 사려니숲길과 비슷하다.

젊은이들이 줄을 서서 사진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바람개비와 바다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 입소문 난 듯하다.

성산포선착장에서 출발한 배는 불과 15분이면 우도 하우목동항에 닿는다. 배에서 우도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간 한라산 동쪽 능선의 오름에 오를 때면 멀리 일출봉 왼쪽에 보이던 우도가 눈앞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으로만 바라보던 우도에 발을 디뎠다. 지도를 보며 잠시 걸을 방향을 확인하는 새에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곧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어서 길은 한산했다. 북쪽 해안도로로 방향을 잡고 걷는데 삼륜전기스쿠터, 스쿠터, 자전거 등 각종 탈 것들을 전시해 둔 상가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항구 근처에서 특별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나, 기념품 상점 등을 기대했는데 의외의 풍경이었다.

우도 북쪽 끝의 봉수대는 불꽃과 연기로 외부의 무력 침입 등 급한 상황을 알리던 군사 통신 수단이었다. 지금은 근처에 등대가 세워져 배들의 안전 운항을 지원한다.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걸으며 보는 한라산 풍경은 일품이다. 혼자 눈에만 담아두기엔 아까워 사진을 계속 찍다보니 걸음이 늦어진다. 스쿠터가 배기가스 냄새를 풍기며 지나갔다. 삼륜전기스쿠터가 두어 대 그 뒤를 따른다. 해안도로에서 우도 안쪽의 마을로 올레 길표시가 되어 있어 걸어 들어서는데 마주오던 노인이 한 마디 한다.

“마을로 들어가 봐야 볼 것 아무것도 없어요. 저쪽 바닷가길 따라 가는 편이 나아요. 거긴 볼 것도 많고 경치도 좋아요.”

외지인이 걸어 들어와 마을 집들을 스치고 지나가 밭길 걷는 모습을 반기지 않는 눈치다. 이 길로 가지 말고 저쪽 해안도로 따라 가라는 말을 듣고도 굳이 마을로 걸어들어 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발길을 돌렸다. 짙은 옥색 바다 건너 한라산과 그 앞의 오름들이 따라왔다.

우도 동쪽의 하고수동해변은 해안선이 깊이 들어와 있어 바다가 잔잔하고 물이 깊지 않아 가족단위의 휴가지로 최적의 장소다.

길 따라서 나름 눈길을 끌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이는 식당과 카페와 숙박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 쪽으로 길에 동물 조각상이 간혹 보인다. 우도라는 커다란 시계판 위에 시간 별로 십이지신상을 세워두었다. 11시 방향에 돼지상이 있다. 밤 11시면 자시(子時)니까 쥐고, 낮 11시면 오시(午時)이니 말이다. 석상이 돼지든 쥐든 말이든 스쿠터, 자전거,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없다. 그들 대부분은 우도에 오기 전 사진 잘 찍히는 곳을 알아보고 남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해 여유 있게 사진을 찍고 이동하기 위해 저렇게 내 달리고 있거나 그저 우도라는 낯선 곳에서의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수동해변을 지나면 올레는 다시 해변길이 아니라 마을 안쪽으로 이어진다. 동쪽 들 밭담너머로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걷는 내내 눈이 즐겁다.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쌓은 방사탑,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신당을 비롯해 해녀들이 물질을 준비하던 불턱 등 모두 돌을 이용해 쌓아서 눈에 띄기는 하지만 멈춰 서서 살피고 그 설명을 읽어보는 이는 없다. 멈춰서 살피고 읽어보아도 사실 제주 해안가에서 이미 본 적이 있는데다가 특별히 다른 점도 없다.

바다 안으로 돌출된 화산 암반 위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누군가 그 암반 끝에 알록달록한 바람개비를 여럿 세워두었다. 꽤 큰 바람개비가 바람에 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바람개비를 배경으로 서둘러 사진을 찍고는 떠난다. 똑같은 배경, 똑같은 몸짓의 사진으로 ‘우도에 다녀왔음’을 증명하려는 사진이다.

쇠머리오름이라고도 하는 우도봉을 오르는 짧은 구간에서 딱 한 번 숲 그늘을 만난다.

해안길을 따라 걸으라는 노인의 말에 따라 우도의 북쪽 끝에서 등대와 해녀의 집을 보고 동쪽 해안을 걸어 들어갔다. 거기에 아늑한 모래사장이 숨겨져 있었다. 하고수동해변이다. 해변이 깊숙하게 파고 들어와 있어서 바람의 영향도 크게 받지 않을 것 같은 해변이다. 고운 모래가 완만하게 펼쳐진 위로 맑은 물이 찰랑거렸다. 수심이 깊지 않아 가족 단위의 휴가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우도봉 능선에서 내려다보면 검멀레해변의 해안선이 마치 우리나라 지도의 남쪽 해안선인양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2 킬로미터의 올레길 역시 해안도로가 아니라 섬 안쪽의 마을과 밭 사이를 통과한다. 제주에서는 어디를 가든 밭의 돌담 경관이 일품이다. 그 길 끝에서 소머리오름으로도 불리는 우도봉으로 오른다. 우도봉 능선까지 오르는 길에서 우도에 들어와 처음으로 숲을 만났다. 숨이 거칠어질 즈음 능선에 올라 동쪽 바다를 보니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망망대해다. 능선 아래쪽 해안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검멀레해변과 인근의 경관을 보러 온 사람들인 듯했다.

우도봉 등대는 1906년 처음 가동을 시작했으며 2003년 현대식으로 다시 세웠다.

10월 초였는데도 햇빛이 강해 우도봉 등대 아래 섰을 때는 어느 정도 지쳐 있었다. 전시되어 있는 세계 각국의 등대 모형을 보는 둥 마는 둥 잠시 살피고 내려왔다. 천진항까지 그리 먼 길은 아닌데 걷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끊임없이 지나가고 다가오는 스쿠터와 전기자전거와 삼륜스쿠터를 피하느라 끝없이 멈추어야 했다.

천진항에서 올레길은 다시 마을로 꺾어 들어가 있었다. 무시하고 일출봉을 바라보며 해안 길을 걸었다. 바다에 비치는 햇살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리 멀리 가지 않아 해안 길 택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오후 들어 해안길은 전기자전거, 오토바이, 전기스쿠터, 2인용 자전거, 승용차 그리고 노선버스까지 등 온갖 구르는 것들이 끝없이 오고가며 걷는 이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제야 우도올레가 해안 길을 피해 거의 마을로만 이어져 있는지를 알았다.

우도 산호해변으로 알려진 이곳의 백색 모래는 우도와 성산 사이의 바다에서 자라는 홍조류가 탄산칼슘을 침착시켜 형성된 후 물결에 휩쓸려와 이곳 해안에 쌓인 것이다. 산호가 아니라 탄산칼륨 알갱이다.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이곳의 알갱이 또는 덩어리의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하우목동항이 멀지 않은 곳에서 ‘우도산호해변’, ‘서빈백사해수욕장’, ‘홍조단괴해변’ 등으로 불리는 백사장을 만났다. 이곳의 모래 색은 거의 순수한 흰색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모래라기보다는 크고 작은 산호 알갱이처럼 보인다. 우도와 성산 사이의 바다 속의 홍조류가 광합성작용을 하며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작은 알갱이를 만드는데 이렇게 성장하던 알갱이들이 바닷물에 휩쓸려와 이곳 우도 해안에 쌓인 것이다. 부서진 산호처럼 보이는 이곳 해변의 흰 알갱이들은 탄산칼슘 덩어리다. 우도의 이 해변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우도 해변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그 앞의 오름, 해안의 기묘한 바위, 하고수동해변의 아늑함, 홍조단괴해변의 흰색 모래와 물빛, 우도봉에서 바라본 일출봉과 망망대해 그리고 척박한 밭을 일구기 위해 쌓은 밭담의 풍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바람 잔잔한 날 한가한 우도 해안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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