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임을 말하지 않으면 의사들은 적절한 보호도 못한 채 진료할 수밖에 없어요. 장갑을 이중으로 착용하거나 상처가 나지 않도록 더 조심할 수 있는데도. 또 감염성질환 보유 환자를 진료한 도구는 더 철저하게 멸균이 돼야 하는데, 관리가 안 되면 그게 그대로 다른 환자한테 사용되는 거죠.”
한 치과병원 소속 의사가 한 말이다. 우리나라는 에이즈 환자가 진료를 볼 때 자신의 감염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의료기관의 불필요한 차별과 진료거부를 막기 위함이지만 결국 그로 인한 부작용은 ‘편견’을 가진 의료기관, 일반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물론 치과 진료를 통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에이즈는 HIV에 감염된 후 면역체계가 손상돼 주폐포자충 폐렴, 결핵 등이 나타났을 때를 말한다.) 의사도 더 조심히 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들이 감염사실을 어렵지 않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환경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에이즈에 대해 오인하는 경우가 많고, 의료인마저 환자들의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9년 에이즈에 대한 지식‧태도‧신념 및 행태조사’ 조사결과를 보면, 에이즈에 대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불치병’, ‘죽음’ 등으로 공포와 연관 지어 떠올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불결하다’, ‘수치스럽다’, ‘말 못하는 질병이다’와 같이 폐쇄적인 질병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이즈에 대한 지식수준을 보면, 포옹, 악수 등 가벼운 접촉으로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지식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입맞춤, 식사, 변기사용 등 좀 더 긴밀한 접촉으로는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즉, 일상생활로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에 대한 개인적 낙인(개개인 스스로가 감염인을 차별하는 정도) 인식 조사에서는 ‘나는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직장에 다닐 경우, 회사에서 그 감염인을 해고시키길 원한다’라는 질문에 약 40%가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자녀가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학교에 다닐 경우, 해당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에이즈 감염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의 질문에는 각각 45.1%, 52.4%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와 함께 사회적 낙인(사회 또는 타인이 감염인을 차별하는 정도) 인식 조사에서는 ‘대부분 사람은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직장에 다닐 경우, 회사에서 그 감염인을 해고시키길 원한다’라는 질문에 50.8%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부분 사람은 자녀가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학교에 다닐 경우, 해당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에이즈 감염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의 질문에는 각각 59.4%, 69.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들은 누구와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에이즈 퇴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감염자가 감염상태인 것을 알아야 치료든 뭐든 할 텐데 남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익명검사’조차 받지 않을 수 있다. 감염사실을 알리지 않고 병원 진료를 받음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감염 전파 위험을 높이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감염원이 존재하는 이상 그 누구도 바이러스에 자유로울 수 없기에 환자들이 숨지 않도록,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환경은 우리의 인식 개선이 바탕이 되어야 만들어지는 것이고 정부는 그것을 도울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에이즈에 대한 오인된 지식과 차별적 태도,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 정책과 교육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2023년까지 에이즈 퇴치를 목표로 ‘HIV 예방관리 대책’을 수립했는데, 그 안에는 감염인 대상 요양(돌봄) 서비스 모델 개발 및 정책 반영, 검진 환경 개선, 상담서비스 등 확대, 홍보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모두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들이지만, 질병에 대한 인식 개선이 베이스가 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라고 본다. 대국민 홍보와 교육 강화를 통해 효과를 보는 날이 오길 바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