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민생법안 등의 처리를 위해 10일 본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무제한 토론방식의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인 ‘필리버스터’ 카드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9일 오전 선출된 자유한국당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후 2시경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12월10일 국회 본회의 개최 후 예산안 처리’와 ‘199개 안건에 신청한 필리버스터 철회’를 약속했다. 정기국회 종료 하루를 남겨둔 상황에서 이뤄진 극적 타결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10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고 본회의에 부의된 내년도 예산안을 비롯해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여야가 합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던 비쟁점법안 수백개 중 가능한 많은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처리안건을 정리하고 표결순서를 정하고는 등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 2시간 후 개최한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예산안 합의가 이뤄질 경우’라는 조건을 달아 필리버스터 철회여부를 추후 결정하겠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하며, 모든 작업이 다시금 멈췄다. 만약 예산안이 한국당 의도대로 합의되지 않을 경우 필리버스터를 발동하거나, 여타 부의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도 있어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 의원총회 직후 “한글을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합의문을 그렇게 읽을 수가 없다. 이건 지나치게 편의적인 해석”이라며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 철회가 동의되지 않았지만 부결시키면 신임 원내대표의 위상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꼼수를 쓴 것과 같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상황을 봐가면서 하겠지만, 3당 간사 간 밤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끝내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오후 2시에 본회의를 다시 열어 ‘4+1협의체’에서 합의한 안을 상정해 의결하게 될 것”이라며 “같은 방식으로 선거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쟁점법안도 상정할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민생법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아직 상정 순서 등은 정하지 않았지만 합의가 파기되면 민식이법(통칭 어린이생명안전법) 등의 상정 가능성도 있다”며 “아직 완전히 가능성이 닫힌 것은 아니다. 한국당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 필리버스터를 철회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일단 내일 아침(예산안 논의결과 발표)까지 지켜봐야한다”고 부연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경우는 ‘4+1협의체’ 등의 논의를 통해 처리가 가능할지라도, 야당의 협조가 없다면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법안의 처리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원내대표 회동에서 합의한 5가지 사안 중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데이터3법 등 계류법안을 처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던 것이다.
이와 관련 정 원내대변인은 “범죄자에 대한 DNA 체취가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이 났기 때문에 법을 마련해야하는데, 그게 마련되지 않으면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같은 사건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데이터3법, 과거사법 문제도 그렇고 긴급하게 해결해야할 부분들이 있다”며 한국당의 비협조적 태도로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을 꼬집기도 했다.
한편 관건은 예산안이다. 당초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513조5000억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이를 두고 ‘4+1협의체’는 과대편성된 정부 출자 혹은 출연금 등의 규모를 축소해 1조2000억원 가량을 순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슈퍼예산의 편성 자체에 부정적 입장을 내보인 바른미래당과 한국당이 ‘4+1협의체’가 제시한 수정예산안을 수용할 것이냐는 점이다. 지상욱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와 김재원 예결위원장(한국당 정책위의장)은 ‘4+1 협의체’ 자체가 불법적 조직이라는 점을 꼬집으며 11월30일 예결위 심사 이후 내용부터 다시 논의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10일 오전까지 수정예산에 대한 합의안이 도출하고, 기획재정부 등에서 예산명세서를 다시 뽑은 ‘시트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일이 될 것이라며 10일 예산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에 예결위 간사간 밤샘합의에 정치권을 비롯해 예산당국과 민생법안 처리를 바라는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