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겨울철의 별미 ‘냉이’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겨울철의 별미 ‘냉이’

기사승인 2019-12-10 12:34:58

우리말의 식물 이름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은데 ‘쑥을 닮았다’하여 ‘쑥갓’이라 부르는 것이나, ‘냉기(冷氣)를 이긴다’고 하여 ‘냉이’로 이름 지어진 게 좋은 예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고들빼기, 씀바귀 등의 능동초(凌冬草)중 하나인 냉이는 독특한 향과 맛으로, 자칫 식욕이 떨어지기 쉬운 봄철에 우리의 입맛을 도와 춘곤증을 예방하는 대표적인 봄나물로 알려져 있다.

냉이의 잎에는 비타민A가 풍부해서 눈의 피로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철분, 칼슘 등의 미네랄과 아울러 삼대영양소의 하나인 단백질 함량도 매우 높다. 냉이에는 아연 성분도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상처의 빠른 치유와 재생에도 도움을 준다. 봄철에 캔 냉이로 국을 끓일 때는 냉이 뿌리를 넣고 끓여야 더 맛이 좋은데 이는 냉이가 겨우내 대부분 영양소를 뿌리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냉이는 온대지역에 널리 분포하여, 논밭의 둑이나 들판 등 우리나라의 대부분 땅에서 잘 자란다. 냉이는 십자화과의 이년생 풀로 대부분의 약용식물 관련 서적에는 4월에서 5월 사이에 꽃을 피운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반도의 따뜻한 남쪽 끝자락에서는 2월 중하순부터 개화를 시작한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3월 중순까지 대부분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렇게 식물학 문헌과 실제 꽃피는 시기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로는, 냉이라는 이름이 원래 평안도 지역에서 불리던 것으로, 남한보다 추운 평안도 지역의 개화 시기가 4~5월에 가까워서 현재 한반도 남쪽 지역의 개화 시기와 다르게 기록된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요즘의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한반도 평균기온이 상승한 생육환경의 변화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냉이는 각 지방마다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평안도에서는 냉이, 황해도에서는 내이, 충청도에서는 나상이, 경상도에서는 난생이 또는 나싱이, 전라도에서는 나상구, 나상개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름들의 유래에 대해 숲해설가 서정원 선생은 ‘나숭개’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숭개(蘿菘芥)는 ‘무 라(蘿), 배추 숭(菘), 겨자 개(芥)’ 즉, 무맛, 배추 맛 그리고 겨자 맛을 은은하게 지닌 냉이의 독특한 풍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냉이의 한약명(韓藥名)은 제채(薺菜)인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냉이를 ‘땅에서 나는 쌀 같은 중요한 야채’란 뜻으로 ‘지미채(地米菜)’, ‘생명을 보호하는 풀’이란 의미로 ‘호생초(護生草)’라 하여 ‘속을 편하게 하고 간의 기능을 이롭게 하여 눈을 밝게 하고 소화기능에 도움을 준다(利肝和中,明目益胃)’고 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냉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피를 잘 돌게 한다’고 적혀 있다.

냉이와 같은 십자화과 식물이면서 사는 곳과 자라는 시기와 생긴 모양마저 비슷한 꽃다지는 한약명이 정력(葶藶)이다. 냉이와 꽃다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꽃의 색깔로, 꽃다지는 노란색의 꽃을 피우고 냉이의 꽃은 흰색이다.

이렇게 냉이는 이른 봄을 알리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의 대표적 식물로, 꼭 봄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지금부터가 냉이의 맛과 향이 높은 시기다. 냉이는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 날씨 속에서 영양분의 대부분을 뿌리에 저장하면서도 푸른 녹색 잎의 생기를 간직하여 풍부한 맛과 영양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준다. 고마운 냉이를 떠올려보며 냉이의 풍미를 정감 넘치는 시적 언어로 잘 표현한 김영복 시인의 ‘냉이’라는 시를 옮겨 적어본다.

‘냉이’ (김영복)

(중략)
꽁꽁 언 땅 뚫고
얼굴 내민 널 보면

모든 걸 당신에게 바친다는
널 생각하면
아무런 반찬 없어도
너만 있으면
정성껏 더 떠서 밥상머리에 놓는
한 그릇의 따뜻한 국 같아서
다 주고도 남아
다시 구구하게 우러난 국 같아서
누가 봐도
환해지는 밥상머리
얼른 된장 풀어
국 끓여 맛있게 먹고 싶다.

네가 알려주는
너의 안부를 듣고 싶다.

박용준(묵림한의원 원장/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