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2020년 경자년을 맞아 선택과 집중을 통한 안정성을 꾀한다.
◇ CJ, 공세 거두고 안정성 꾀한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2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국내와 글로벌 경기 악화가 지속되는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양적 성장’보다는 안정적 수익성이 동반되는 ‘혁신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J그룹은 올 한해 ▲혁신 성장 기반으로 기업가치 제고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이 될 초격차 역량 확보 ▲‘일류 인재’, ‘책임 경영’, ‘목표 달성’을 축으로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일환으로 CJ는 연말 인사를 통해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의 수장을 신현재 전 대표에서 강신호 총괄부사장으로 교체했다.
강신호 신임 대표이사는 현재 CJ제일제당이 재무 악화로 비상경영' 선언한 상황인 만큼 수익성 개선과 재무안정화 등의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CJ그룹이 이처럼 새해·인사 기조로 ‘성과주의’를 내세운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근 채무 급증에 따른 재무 악화로 알짜 자산을 잇따라 매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CJ그룹은 최근 2년간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인해 채무가 급증했다.
앞서 CJ제일제당은 2017년 브라질 사료업체 셀렉타를 3600억원, 지난해에는 미국의 식품업체 슈완스컴퍼니를 2조원에 인수했다. 그 결과 2015년 5조원 수준이던 CJ제일제당의 차입금은 지난해 7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3분기에는 9조5000억원에 육박했다. 불과 4년 만에 차입금이 2배 가까이 불어났다.
여기에 CJ대한통운도 최근 2년간 베트남과 미국에서 3300억원대 M&A를 단행하면서 그룹 전체 채무는 13조원에 달한다.
이에 CJ그룹은 자산 매각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해 CJ헬로와 투썸플레이스를 매각해 1조18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확보한 데 이어 서울 강서구 가양동 부지와 구로공장 부지, CJ인재원까지 매각하며 추가로 1조1300억원을 마련했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의 지난해 3분기 차입금은 9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말(7조원)과 비교해 20% 가량 증가했다. 5조원 수준이던 2015년과 비교해보면 4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과도화된 시장 경쟁으로 CJ제일제당 식품부문 영업이익률도 2016년 7.6%에서 올해 5% 수준으로 낮아졌다.
바이오사업부문도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1437억원으로 지난해 총 영업이익인 2596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생산공정 개선과 운영 최적화를 통해 원가절감 등 비용 효율화를 강도 높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식품사업 부문에서는 국내사업 효율화에 방점을 두고 해외에서는 슈완스 인수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핵산과 트립토판 등 고수익군 제품의 생산 및 판매를 확대하고, 라이신과 메치오닌 등 대형 제품은 원가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다만 질적 성장을 위한 투자는 이어갈 방침이다. 손 회장은 “혁신 성장으로의 전환은 향후 본격적인 글로벌 성장을 위한 준비 과정이므로 지금 이 시기에 초격차역량을 반드시 확보하고 강화해야 한다”면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사업관련 연구개발(R&D), 기술 시스템 재정비를 통해 역량을 강화 할 목표를 수립·달성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 신동빈, ‘뉴롯데’ 위한 호텔롯데 상장 박차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숙원사업인 호텔롯데 상장과 유통 계열사의 성장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말 롯데그룹은 사업부문(BU)장 2명과 계열사 대표 22명을 바꾸는 등 역대 최대규모의 쇄신인사를 단행했다. 경기침체 속에서 그룹 매출 100조원 달성을 위해 새 판을 짰다.
이같은 인사는 숙원사업인 호텔롯데 상장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롯데지주에서 재무혁신실장을 역임한 이봉철 사장을 호텔·서비스 BU장으로 세웠다.
이봉철 신임 BU장은 롯데지주 출범 과정에서 계열사 분할·합병과 롯데정보통신 상장 등 굵직한 현안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BU장에 지주사 출신 인물이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호텔롯데는 지난 11월 올해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TF팀을 다시 꾸렸다. 호텔롯데 상장은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일본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실제로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롯데홀딩스(19.07%)다. 이를 포함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한 광윤사 등 일본계 주주들의 지분율은 99%에 달한다.
호텔롯데가 상장을 위해 국내에서 신주를 발행하면 일본계 지분율은 낮아지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격차도 더 벌어진다.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인 셈이다.
주력 부문인 유통BU의 변화도 거세다. 롯데는 백화점과 마트, e커머스, 롭스 등으로 나눠져있던 사업부문이 하나의 통합 법인으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이들 4개 사업부문의 대표는 모두 교체됐다.
각 계열사간 대표 체제로 운영돼왔던 조직체제도 강희태 신임 유통BU장(부회장) 통합 대표체제로 바뀌었다. 강 부회장에 유통 계열사 부활이라는 특명이 주어진 모습이다.
롯데 유통BU는 대대적인 수장 교체를 진행한 만큼 실적회복에 사활을 건다는 계획이다. 소비 트렌드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전환되는 만큼 그룹 차원에서 진행 중인 디지털 전환을 위한 통합 어플리케이션 ‘롯데ON’을 상반기 내 정식 출범한다. 롯데그룹 물류와 고객 서비스도 통합해 쇼핑 사업부문의 전체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 신세계, ‘선택과 집중’ 꾀한다
신세계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부실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이마트 2020년 경영전략회의’에서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의 주 경쟁사를 온라인이 아닌 편의점과 전문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이마트는 지난해 3분기까지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누적 매출 14조2297억원에 영업이익 1천606억원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1.0%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60.0% 급감했다. 지난해 2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마트의 할인점부문 매출은 8조372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2258억원으로 45.5% 감소했다. 반면 같은기간 편의점의 월별 매출은 모두 전년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선택과 집중의 일환으로 신세계는 주요 전문점 사업의 폐점을 결정했다. 정 부회장이 직접 챙겼던 ‘삐에로쑈핑’ 사업을 접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삐에로쑈핑은 지난해 6월 일본의 유명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선보였다. 그러나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결국 1년 6개월만에 폐점을 결정했다.
헬스&뷰티(H&B)스토어 부츠는 점포별 수익성 분석을 거쳐 영업효율을 극대화한다. 부츠는 이마트가 2017년 영국 월그린부츠얼라이언스(WBA)와 합작해 들여온 브랜드다. 지난해 상반기 18개 점포를 폐점해 현재 15개만 남아 있다.
대신 전자제품 위주 판매점인 ‘일렉트로마트’는 내년에 10여개 점포를 추가로 연다. ‘잘 하는 사업’ 위주로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이마트는 일렉트로마트가 사업성이 높은 전문점이라고 보고, 20~30대 젊은 고객층을 겨냥해 ‘키 테넌트(상가나 쇼핑몰에 고객을 끌어 모으는 핵심 점포)’로 육성하고 있다.
수출길도 확대한다. 이마트 ‘노브랜드’는 지난해 11월 필리핀 마닐라에 1·2호점을 냈다. 올해에는 8개 점포를 추가로 열 방침이다. 노브랜드는 2015년 베트남 출점 이후 현재 20여개국에 수출해 250% 성장한 70억원의 수익을 냈다.
주력인 이마트는 그로서리 매장을 강화하는 등 기존 140개 이마트 점포 30% 이상을 리뉴얼한다. 신선식품 MD와 식음료 브랜드를 강화해 고객이 찾는 브랜드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