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커넥트, 난 그저 기만자일까”…배달하다 새해를 맞다②

“배민커넥트, 난 그저 기만자일까”…배달하다 새해를 맞다②

[발로쓴다] 직업 배달원과 일반인 배달원…가깝고도 먼 사이②

기사승인 2020-01-09 04:23:00

질주를 시작했다. 자전거 핸드폰 거치대의 내비게이션에 몸을 맡겼다. 두 번째 배달은 식료품 배달이다. 이번은 늦지 않으리라. 하지만 힘겹게 시간 내 목적지 부근에 도착해도 마지막 20m가 문제였다. 이 거리선 내비게이션조차 정확한 내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적어도 이 구간만큼은 아직 기술로도 얻을 수 없는 온전한 경험의 영역임을 깨달았다.

○○오피스텔의 간판을 찾을 수 없어 근처를 헤맸다. 속은 다시 타들어갔다. 그러길 몇 분째. 배달을 마치고 나오던 다른 기사의 도움으로 겨우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베테랑 기사와 초짜 기사의 차이는 이 가깝고도 먼 20m부터 벌어져 있었다. 그에게 기자로서 많은걸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배달에선 시간이 곧 돈이니까. 

“안전하게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애써 터져 나오는 말을 새해 인사로 대신했다. 뒤돌아 사라지는 그의 위로 헬멧에서 새어난 입김이 피어올랐다. 두 번째 배달을 마치자 10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2020년 새해까지는 이제 2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2019년의 마지막 날. 도시 골목골목과 주택 단지에서 느낄 수 있는 인기척이라곤 배달 기사의 오토바이 소리, 가로등의 윙윙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기자에게 도움을 준 기사는 배달의민족 렌탈 바이크를 탔다. 이들은 직업 라이더다. 기자가 하고 있는 일반인 라이더인 배민커넥트와 다르다. 플랫폼 노동인 것은 같지만, 이들의 대다수는 근무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사실상 관리 감독도 받는다. 직업 라이더와 ‘배민커넥트’는 불편한 존재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배민커넥트’를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은 그간 배달의민족이 이동 거리가 짧고, 여러 개의 배달이 가능한 좋은 주문을 배민커넥트에 몰아주고 있다고 호소해왔다. 직업 라이더들은 배민커넥트가 남긴 악조건의 소위 ‘똥콜’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일반인 배달의 확산이 직업 라이더들의 처우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공급이 늘면 그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배민커넥트도 그래서 생긴 것이 아닌가. 

“나는 그저 이들을 기만하고 있던 걸까”   

배달 중 새해를 맞는 기사들의 마음을 느껴보려 시작했건만, 사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은 자괴감이었다. 괜히 나로 인해 이들의 일거리만 줄어든 것이 아닐까. 하루 이틀 배달 일을 해본다고 한들, 이들의 고충을 다 엿볼 수도 없는 것일 터다. 배달로 온전히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 입장에선 오히려 분통이 터질 만한 일이다. 

복잡한 생각을 잠시 접고 다시 배달에 열중했다. 3번째, 4번째도 가까스로 배달을 마쳤다. 국물이 있는 음식이나 커피는 혹시라도 쏟을까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자칫하다 고객의 클레임이 들어오게 되면 그 책임은 기사인 내가져야 한다. 배민과 나의 계약이다. 적어도 배달 기사들은 고객의 음식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피부로 느꼈다. 

5번째 배달을 마쳤을 즈음, 2020년 새해가 밝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배달 콜은 어김없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논현동의 호프집에서 언주역 인근 고시텔로 음식을 배달해달라는 6번째 주문을 하나 더 잡았다. 영하의 날씨에 핸드폰의 배터리는 순식간에 닳아갔다. 이따금 언덕이나 계단이 나오면 한숨부터 나왔다. 

“아무도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자전거는 인도로 다닐 수 없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내려서 건너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기자는 이 규정을 다 지키지 못했다. 시간 내 배달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변명 밖에 할 수가 없다. 식은 음식에 화난 고객을 생각하면, 언덕에서도 없던 힘이 솟았으니까. 물론 배민커넥트 자전거 배달 기사는 사고 시,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다. 사고 처리도 직접 해야 한다. 

6번째 배달을 마치니, 1월 1일 새벽 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기 중인 배달주문 알림은 여전히 수두룩했다. 이제 남은 배달 콜은 직업 라이더들이 처리할 터다. 기자는 앱을 끄고 일을 마쳤다. 뭔가 홀가분한 기분을 기대했건만, 마음은 정반대였다. 이 시간에도 배달 오토바이는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어둑한 건물 사이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휴식을 제외하고 대략 5시간을 일했다. 총 6건을 마쳤다. 배달 1건당 1시간 가량이 걸린 셈이다. 목표했던 10건은 채우지 못했다. 앱에는 2만9500원이란 돈이 찍혔다.

[배달하다 새해를 맞다 ③]에서 계속.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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