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법조항이 마련된 후 처음으로 권력자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는 다툼 끝에 ‘유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형이 확정된 이정현 의원(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수긍의 뜻을 표하며 사건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다만 관련 법 개정의 의지 또한 피력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재판관)는 16일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해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원심에서 방송법에서 정한 ‘방송편성에 관한 간섭’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하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 의원이 개인적 친분이 있던 당시 김시곤 KBS보도국장에게 사적으로 부탁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방송법에서 금지한 편성에 대한 간섭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항소심 재판부도 “향후 해경을 비난하는 보도를 당분간 자제해달라거나 보도내용을 교체·수정해달라고 방송편성에 간섭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해경이 구조에 전념토록 하거나 사실과 다른 보도를 시정하려했던 동기를 참작해 벌금형으로 형량을 낮췄을 뿐이다.
1심과 2심에서 이 의원이 개인적 친분에 기대 당시 보도국장에게 사적으로라도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거나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방송의 편집권에 개입한 것이라고 판단한 결과를 대법원 또한 인정한 셈이다.
이 같은 결과에 이 의원은 “죄의 성립여부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최종 결정에 대해 조건 없이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여전히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유족들에게 위로가 돼주기는커녕 또 다른 상처가 됐을 것을 생각하면 송구하고 마음이 무겁다”며 사과의 말도 전했다.
이어 “업무와 관련 된 사안이었고 사실과 어긋난 진실을 밝히자는 것과 재난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데 몰두하게 해달라는 간청이었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다툴 여지가 없지 않아 3심까지 가게 됐다”고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방송편성 독립 침해혐의로 32년 만에 처음 처벌 받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관련 법 조항에 모호성이 있고, 그래서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는 점과 보완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국회에서 관련법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개정의 의지도 내보였다.
끝으로 이 의원은 “혹시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거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해 불필요한 정쟁을 초래할까 우려해 재판이 진행 되는 동안 언론이나 정치 무대에서 일절 개인적 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다”면서 “제 경우를 참고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더 견고하게 보장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 의원의 입장발표 직후 “세월호 참가 관련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이정현 의원의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정치권력이 언론보도에 개입한 형사처벌을 받은 첫 사례로 의의가 크다”면서도 “행위의 범죄성이 엄중한데 비해 가벼운 형량”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박근혜의 입을 자저해온 이 의원은 얼마전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 권력을 활용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을 기만한 인사가 다시 국회의원으로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게 된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금고 이상의 형이 아니라 의원직 유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라며 총선출마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