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는데 믿음은 전세탈출이 더 힘들어졌다는 결론뿐이었다. 그때 대통령 부동산 잡겠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면 이사를 해야 하는 지금 조금은 걱정 없이 좀 더 큰 집을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테고, 야근에 주말근무로 여전히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지난해까지 이촌동에 살다 셋째를 가져 좀 더 큰, 하지만 좀 더 낡은 아파트로 다시금 전세살이에 들어간 한 30대 가장의 한탄이다. 그는 대통령의 말을 믿고 대출을 더 받아 집을 사지 않은 한 번의 실수가 끝없는 전세살이로 이어질 것 같다는 낙담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제는 그와 같이 집구매를 포기하고 고개를 숙이는 이들(집포세대)가 12·16 부동산대책 이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전망은 점점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성적을 낙제점에 가깝게 매겼다.
통상적으로 부동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지만, 극약처방에 가까운 강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큰 변화를 유도하지 못한데다 부수대책이나 교육정책의 변화 등 외부요인에 의한 상승세조차 막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실제 한국감정원의 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12·16대책이 발표된 후에도 강남4구를 포함해 서울 전체지역의 아파트매매가격이 상승했다. 다만 상승폭이 발표 직전인 12월 16일까지도 0.17%에서 0.20%로 상승했고, 이후에도 0.10%, 0.08%, 0.07%, 0.04%로 상승세가 둔화됐을 뿐 계속해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전세가 또한 0.14%에서 0.18%로 오른 이후 0.23%, 0.19%, 0.15%, 0.11%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강남 4구를 포함해 강남 11개구의 경우 12·16대책 직전 0.26% 증가한 후에도 0.34%까지 급증했다. 이후로도 0.22%, 0.15%로 서울 여타 지역보다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 한 부동산전문가는 “아직 실거래가 신고도 다 안 돼 통계를 분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확실히 매매시장에서 15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의 거래량과 가격 하락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9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가 보합세를 유지하는 동안 9억원 이하의 아파트는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어 상승폭이 둔화될 뿐 하락세를 보이진 않을 듯하다”고 풀이했다.
이어 “강남 특히 대치동 주변 고가 아파트의 매매거래가 줄어들며 가격상승세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효과는 있지만 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며 “좀 더 통계가 명확해지는 월말이나 다음 달 초경 실거래가를 금액별로 나눠 살펴보면 더 뚜렷하게 정책효과를 확인할 수는 있을 듯하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부동산전문가도 “서울 전세가가 지난 12월부터 오름세를 보였다. 특히 교육정책 변화로 강남, 대치, 양천구, 목동 등 전통적인 학군지역을 중심으로 올랐다. 이사철 수요의 영향도 있어 정책의 여파로 보긴 어려울 수 있지만, 전세를 연장하거나 재계약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9억원 이하 아파트의 호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현상을 설명했다.
마포구의 한 부동산업자는 “요즘 실제 거래를 하려는 것이 아닌 집주인들이 지난해 중순까지만해도 7~8억원하던 27평형대 아파트 호가를 8억원에서 많게는 9억원 직전까지 부르고 있다. 팔리면 좋고 아니어도 시세가 오르니 좋다는 식”이라며 “실거주 목적의 신혼부부나 서민이 집 사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우리도 거래가 줄어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부동산정책 전문가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책은 몸이 아플 때 쓰는 약인데 이 정부는 마약류 진통제와 독약만 쓰고 있다”며 “계속 망치지 말고 가만히라도 있으면 시장의 면역력이나 회복력으로 스스로 회복하는 게 빠를 것 같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지금의 급격한 부동산 가격상승은 수급불균형 문제로 보이지만 결국 과잉된 유동성이 흘러갈 곳이 없어 생기는 문제다. 부동산 규제만으로는 절대 가격 못 잡는다. 자금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해야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거시 차원의 부동산 정책에 정말 무지한 것 같다. 국민이 보기에만 시원해 보이고 효과는 없는 정책은 당장 그만둬야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일련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이며 규제 강화를 위한 추가방안들을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5일 “12·16대책 이후 주택시장은 빠르게 안정세로 전환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단기간 급등 양상을 보였던 서울집값도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으며 강남4구 모두 10월 이전 수준으로 상승세가 둔화됐다”고 했다.
특히 “집값 상승을 견인해왔던 15억원 초과 초고가 주택은 12월 5주부터 하락 전환됐으며 9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의 경우 서울 전체의 경우뿐만 아니라 강남의 경우도 대책 이전보다 상승폭이 둔화돼 일각에서 제기되는 풍선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국지적 과열을 보인 서울 전세가격도 상승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고 낙관했다.
나아가 “금융, 세제, 시장질서 확립, 공급 각 부분에 대한 후속조치가 원활하고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시가 15억원 초과주택에 대한 구입용 주택담보대출 금지가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LTV 비율조정 등은 대책 시행과 함께 행정지도를 통해 즉각 시행됐으며, 전세대출회수 등 갭투자와 관련한 후속 조치도 1월 중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인상하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과 장특공제에 거주기간 추가, 분양권 주택수 포함 등 양도세 혜택을 실거주자 위주로 개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공급질서 교란행위에 대한 청약제한을 강화하는 ‘주택법 개정안’, 임대사업자등록요건을 강화하는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안’ 등 빠른 시일 내 원만히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밖에 ▲일시적 2주택 양도세 비과세 요건 및 임대등록주택 양도세 비과세 요건에 전입요건 추가 ▲한시적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 ▲자금조달계획서 제출대상 확대 및 증빙자료 확대 ▲청약 재당첨 제한 강화 ▲공급확대를 위한 서울 정비사업 입주물량 확대 및 조기공급 추진 등도 약속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