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이희준 “저도 제가 다음에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요”

[쿠키인터뷰] 이희준 “저도 제가 다음에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요”

이희준 “저도 제가 다음에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해요”

기사승인 2020-01-22 07:00:00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의 제작보고회 당시부터 배우 이희준에게 체중에 관한 질문이 집중됐다. 영화를 위해 25㎏을 증량했다는 그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그가 살을 찌운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맡은 경호실장 곽상천의 밀고 나오는 듯한 무게감이 신체와 발성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목소리도 달라졌다. 탄탄한 몸매의 이희준이 했으면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을 인물이 달라진 것이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희준은 처음 ‘남산의 부장들’ 시나리오를 받은 순간을 떠올리며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캐스팅 된 배우들의 라인업을 보며 그들과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긴장감 넘치는 대본의 재미에 빠져들기도 했다. 동시에 걱정이 밀려들었다. 이희준은 곽상천에 대해 “이해가 안 됐다”고 했다.

“처음엔 곽상천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캄보디아 관련 대사도 정말 무시무시한 말이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대체 뭘 믿고 있는지, 신념이 뭐지 싶었죠. 자신보다 훨씬 선배인 김규평에게 막말을 하는 모습이나 마지막 장면의 행동도 이해가 안 됐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선 이해가 돼야만 할 수 있거든요. 마지막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것 같아요. 영화에선 40일의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 전에 곽상천이 어떻게 자랐고 각하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각해봤어요. 곽상천은 각하가 국가라고 믿고 그가 하는 일이 옳으니까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끝나고 나니까 ‘그냥 사람이구나’, ‘그럴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곽상천 같은 사람과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이희준은 그렇게 조금씩 그를 이해해갔다. 영화에서 가장 과격하고 엇나가는 인물이지만 이희준의 시각에선 달랐다. 곽상천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그 역시 답답한 점이 많았을 거라 설명하며 웃었다.

“이병헌 선배님과 멱살 잡는 장면은 재밌었어요. 합을 맞추는 큰 액션도 아니고 서로 편견에 가득해서 바라보는 장면이잖아요. 곽상천으로선 억울했을 것 같아요. 모든 게 각하를 위한 건데 김규평은 왜 정보부장이 해야 할 일도 안 하고 불편하게 하는지 정말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탱크를 돌리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했을 것 같고요. 곽상천에게 ‘당신은 1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물어도 아니라고 했을 것 같아요. 오직 각하를 위해서 각하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돕는 사람이었죠. 김규평이 각하를 불편하게 하니 곽상천이 화를 대신 내주는 느낌으로 한 타이밍 빠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 사람도 있었겠구나 하고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곽상천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중심을 잡는다. 어느 장면이든 그가 나오면 관객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보이는 모습이 전부인 단순하고 투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처음 기술 시사 때 영화를 보고 많이 불안했어요. 영화를 봤는데 제 캐릭터에만 레이어가 없는 거예요. 저렇게 통나무처럼 대사에 겹겹이 서브텍스트를 넣지 않고 연기해도 되나 싶었죠. 배우 이희준이 그동안 제안 받거나 했던 연기를 보면 다른 의미를 내포한 인물이 많아요. 그런 모습의 연기를 많이 생각하고 즐기는 편인데, 이번 작업은 레이어를 거세해야 했죠. 곽상천이 ‘똑바로 해, 똑바로’라고 말하면 정말 그 말 외에 다른 뜻이 없어요. 진심어린 충고인 거죠. 이런 연기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초반에는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이렇게 해도 되나’, ‘나 다 했나’ 싶어 어색했어요. 그래도 이 영화에선 이런 연기가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곽상천이 혼자 다른 생각을 하는 모습을 가졌다면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오로지 각하만 바라보는 마음을 가진 인물이어서 더 그 시대의 사람처럼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희준은 곽상천을 연기한 이후 “나와 견해가 다르거나 확고한 사람을 만나도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배우가 아닌 이희준이었으면 만나거나 대화해보지 못했을 인물들을 배우 이희준이 연기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확고했다. 그의 심장이 뛰게 하는 작품이다.

“얼마 전에 친한 감독님이 ‘나 솔직히 너의 작품 선택 기준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찍다가 영화 ‘해무’를 하고, 그러다가 ‘최악의 하루’를 찍고선 갑자기 ‘1987’을 하고 ‘미쓰백’을 했어요. ‘최악의 하루’는 ‘로봇 소리’와 ‘오빠 생각’을 찍고 있던 중간에 들어와서 소속사에서 반대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전 그걸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면서 흥분됐죠. 3일만 찍으면 된다고 해서 제가 직접 스케줄을 조정했어요. 그러곤 김종관 감독님에게 ‘3일 됩니다. 하시죠’라고 전화했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제가 좋아서 하는 건 신나게 하거든요. 너무 재밌게 찍었어요. ‘컷’ 하면 웃겨서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전 대본을 보고 흥분되고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확 뛰는 걸 쫓아가요. 중독이라고 볼 수 있죠. 자꾸 제 심장을 더 자극하는 것들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봐도 이 기준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미지가 좋은 쪽으로 선택하기 시작하면 제가 사라지잖아요. 잘못 추측하면 위험하기도 하고요. 저도 제가 다음 영화에서 어떻게 연기할지가 궁금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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