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시장 김정섭)는 공주 월송 출신으로 항일구국의 신념을 만주에서 펼친 독립운동가 이호원을 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송강(松江) 이호원은 1891년 4월 11일 공주군 장기면 월송리(現 공주시 월송동)에서 태어나 1978년 5월 1일 87세의 나이로 중국 연길에서 사망했다.
이호원은 만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 광한단, 정의부 등에서 중추적인 역할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민족교육과 한글의 보존·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공립공주보통학교(現, 공주중동초등학교)를 거쳐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現 서울경기고등학교)의 교원양성소에 다니면서 민족의식과 항일에 대한 신념을 키웠으며 조선어 전문강습소에서 주시경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한글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1915년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 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유구공립보통학교(現 공주유구초등학교)에 배치 받아 교원으로 근무하다 고등보통학교 시절에 쓴 반일사상이 담긴 일기가 발각돼 교원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을 위해 1916년 만주로 망명했다.
망명 후 교편을 잡았다가 1919년 한족회에 가입해 기관지인 ‘한족신보(韓族新報)’ 편집을 담당했고, 이어 1920년 5월 현정경·이시열·현익철 등과 함께 광한단을 조직해 단원들의 군자금 모집활동을 지도했다.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1921년 3월에 경성에서 체포돼 7년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에도 항일민족교육과 항일무장투쟁 등에 앞장서다 수차례 체포돼 수감생활을 반복하다 해방과 함께 출옥을 하게 된다.
광복 후에도 연길 한글연구회 주임, 도문중학교 교장,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과 교편을 잡았 등 한글 보급‧발전과 함께 교민에게 지속적으로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는 이호원의 공훈을 기려 지난 200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강석광 문화재과장은 “독립운동사와 민족교육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호원의 생애와 숭고한 신념을 되새기고 널리 알리기 위해 2월의 공주역사인물로 선정해 뜻을 기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는 2월 말 101주년 3.1절을 앞두고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독립운동가 학술세미나 및 공주의 독립운동가 패널 순회전시를 실시될 예정이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