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는 천안이라더니 아산?…우리가 ‘봉’인가”

“어제까지는 천안이라더니 아산?…우리가 ‘봉’인가”

기사승인 2020-01-30 06:05:00

“충청도 중에서도 아산이 ‘봉’이라는 뜻 아니겠어요?”

전세기로 송환될 중국 우한 지역 교민을 수용할 곳이 하룻밤 사이 충남 천안시에서 아산시로 변경됐다. 아산시 주민들은 ‘천안은 안되고 여기는 된다는 말인가’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29일 오전 정부가 우한 교민 격리시설로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을 확정지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부는 오는 30~31일 전세기 4대를 투입해 우한 교민 700명을 입국시킨 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복기인 14일간 격리시설에 수용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천안에 위치한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이 검토됐지만 천안 지역 정치인들과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보류됐다.

경찰인재개발원이 위치한 아산시 초사동에는 같은날 오전 무거운 적막함만이 감돌았다. 초사동 주민들은 이날 언론보도가 나오자마자 오세현 아산시장을 만나 항의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주민들은 항의의 뜻에서 트랙터와 경운기로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를 막았다. 

초사동에서 15년 가까이 거주해온 주민 김모(65)씨는 격리 시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여기 사람들은 다 개돼지라는 말이냐”라며 목청을 높였다. 김씨는 “아산 시민들을 대체 뭘로 보기에 천안이 반대한다고 여기로 변경하는 결정을 내리는 건가”라고 한참 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씨는 “우한 교민 격리시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서 “이번에 한번 양보하면 앞으로도 계속 기피 시설을 여기에 만들려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근에 아산의 대표적 관광명소 신정호수와 온양온천이 위치해있어 유동인구가 많은데 이곳을 낙점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주민 이모(60·여)씨는 “온양시내와 신정호수까지 가는데 5~10분 거리”라면서 “와 하필 여기래요…”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여기는 다 노인들만 사는 곳인데 어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뭔지 마스크는 왜 써야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면역력도 약하신 분들인데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사람이 한 두명 죽은 전염병이 아니라 앞으로 웬만해서는 밖에 잘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자영업자들은 지역 경제에 피해가 올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쭈꾸미를 손질해 납품·판매하는 공장을 운영하는 황모(52·여)씨는 “처음부터 아산으로 정했으면 모르겠지만 천안에서 반대한 다음에 이렇게 되니까 좀 그렇다”면서 “아무래도 음식 제조업체 위치가 초사동이라고 표기되면 소비자들이 꺼려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격리 시설 선정 배경을 정치적 이유에서 찾는 시민도 있었다. 복권판매소에서 만난 백종억(44)씨는 “서울, 대전, 세종시 근처에도 공무원 연수원 많다. 그냥 만만한 게 충청도 아니겠나. 전라도, 경상도는 힘이 센데 충청도는 이회창, 김종필 이후 출신 정치인들이 아무도 없어서 이 모양”이라고 푸념했다. 이어 “아산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출신인데 정부에 싫은 소리 하겠냐”고도 덧붙였다.

초사동에는 전교생 136명 규모의 온양초사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이 위치해있다. 이날 만난 온양초사초등학교 교직원은 “아직 시,도교육청에서 따로 공문을 받은 내용이 없다”면서 “오는 3월2일에나 개학을 하고 돌봄교실이나 병설유치원도 쉬고 있다. 확정된 이후에 학부모들에게 공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초사동은 주거밀집지역인 용화동, 1호선 온양온천역과도 가깝다. 택시를 타고 이동해보니 초사동에서 온양온천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내외였다. 용화동은 용화아이파크 아파트, 용화엘크루아파트 등 아파트 단지 8개와 빌라촌이 위치한 주거 밀집지역이다. 온양용화고등학교, 아산초등학교 등 학교들이 모여있기도 하다.

온양온천역은 수도권 전철 1호선-장항선 구간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역이다. 온양온천을 방문하기 위해 노년층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철도공사 광역철도 수송통계 자료실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해 동안 온양온천역은 승차 183만7658명, 하차 189만106명을 기록했다. 아산역(승차 124만2020명, 하차 109만3122명)보다 많았다.

아산시 역시 난감한 입장이다. 시 온라인 민원상담 게시판에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70여개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시 질병예방과 관계자는 “경찰인재개발원 격리 소식을 언론 보도를 보고 파악했다. 이른 아침부터 ‘어제까지는 천안이었는데 왜 아산으로 변경됐나’, ‘왜 시는 가만히 손을 놓고 있냐’는 항의 전화가 밀려들고 있다. 추가로 전화기 2대를 개통해서 응대하고 있는데도 손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상부에서 아무런 지시사항이나 대응 매뉴얼을 받지 못해서 일선에서도 답답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산=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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