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기자의 트루라이프] 대게잡이 40년, 울진 동환호 김순명 선주

[곽기자의 트루라이프] 대게잡이 40년, 울진 동환호 김순명 선주

기사승인 2020-01-31 00:21:38

-거친 바다에 희망의 닻 내리고 대게와 함께한 40-

-변화무쌍한 겨울바다는 매순간 고비-

-베트남 선원들, 김 선장 부부를 아버지, 어머니로 불러-

-대게철인 요즘 죽변항은 북적북적-

-대게는 다리가 대나무처럼 길어서 붙여진 이름-

-대게 자원 보존에 힘쓰지만 갈수록 어획량 줄어-

-20톤급 대게잡이 어선 동환호, 12시간 동행 취재-

야산 위 하얀 등대에서 쏟아내는 불빛이 칠흑같은 밤바다를 마음껏 가르며 육지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모두가 단잠에 빠져있는 지난 116일 새벽 3,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항 여기저기서 집어등 밝힌 배들이 출항 준비에 분주하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죽변항은 밤낮이 따로 없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 끝마을이라 하여 죽변으로 불리는 죽변항은 울진 북단에 있는 어항이다. 동해안에 손꼽는 어로기지 중 하나인 죽변항은 대게와 오징어, 고등어, 꽁치 등 다양한 어종과 어획량 만큼이나 항 주변으로 크고 작은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줄지어 있다.

출항신고를 위해 동환호 김순명(70) 선주(이하 김 선주)와 죽변파출소를 찾았다. 파출소 소장은 초면인 기자에게 여객선과 달리 어선을 오래타면 뱃멀미가 심하다면서멀미약은 미리 먹었냐며 김 선주에게 배 좀 살살 모세요라면서 긴장을 풀어준다.

아직도 건강은 특별히 문제없는데 아이들이 자꾸 고만 쉬라하네, 솔직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좀 피곤하긴 해~”

40년을 거친 바다에서 보낸 김 선주는 10개월 전만해도 날씨만 허락하면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으나 요즘은 후배 이상호(53) 선장에게 키를 맡겼다. 이따금 이 선장이 일이 있을 때만 배롤 몰고 대게잡이에 나선다.

동환호를 비롯 서너 척의 대게잡이 자망어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파제를 빠져나간다.

꺼억 꺼억선잠을 깬 갈매기들이 배 위로 날며 만선을 노래한다.

방파제를 벗어나 망망대해로 들어서자 검푸른 바다 위 어선은 한낱 조각배에 불과했다.

힘차게 파도를 가르며 속도를 올리자 배는 좌우상하로 심하게 출렁이기 시작한다. 등대불도 서서히 멀어지면서 파도도 거칠어지자 김 선주는 아직도 2시간은 더 가야한다며 선실로 들어갈 것을 권한다

어렵게 중심을 잡으며 내려간 배아래 선실은 기관실에서 쏟아내는 엔진소리와 역한 기름 냄새와 짠내가 뒤범벅이 되어 다시 갑판 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매서운 겨울바다의 찬바람이 오히려 견딜만했다. 선상 밖으로 부지런히 앞서 나온 배들이 조업 준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얼마를 달렸을까 선장이 선원들을 깨우자 흔들림과 짠내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잠에서 깬 5명의 베트남 선원들이 하품을 하며 주섬주섬 작업복을 입는다. 드디어 대게잡이가 시작된 것이다.

동환호가 지난해 12, 바닷 속 400m에 서른 세틀(한틀의 그물길이는 360m)의 그물을 쳐 놓은 곳은 죽변항에서 10km 가량 떨어진 왕돌초 지역이다. 해저산맥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개흙이 없고 모래와 대게가 좋아하는 먹이인 해초가 풍부한 대게의 서식지다.

대게(Chionoecetes opilio)는 게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다리 생김새가 대나무처럼 길고 마디진 다리를 가졌다하여 '대게'라 부른다.

배의 앞부분인 선수에 서서 한참이나 밤바다를 살피던 김 선주는 무엇가 발견하고 선원들에게 큰소리로 외친다. 바로 바다 속 긴 그물의 시작을 알리는 동환호 표식과 고유번호 9번이 쓰여진 대형 부표를 발견한 것이다.

빨리 빨리 앞으로들 와김 선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모두가 긴장한다.

출렁이고 미끄러운 갑판 위에서 커다란 부표를 건져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고참선원이 갈고리로 어렵게 부표를 끌어올리고 그물을 끌어올리는 기계인 양망기에 어망의 줄을 연결한다. 심해에 드리워진 어망에 연결된 밧줄을 끌어올리는데도 족히 10분은 걸렸다. 김 선주는 갑판 한쪽에서 쉼 없이 올라오는 600m의 밧줄을 차분하게 말고 있다. 마침내 컴컴한 바다 위로 그물 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김 선주와 선장을 비롯 선원 모두가 기대 속에 대형 기계 물레인 양망기를 주목한다물레가 몇 바퀴나 돌았을까 기다리던 '겨울바다의 진객' 대게가 모습을 드러냈다양망기를 다루는 선원을 빼고 나머지 선원들은 뒤로 물러앉아 그물에 달려 올라오는 대게를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생각보다 대게가 많이 나오지 않자 김 선주의 표정이 밝지 않다


매년 조황이 나빠져서 걱정이에요, 우리가 자율적으로 조업시기도 늦추고 그물코의 크기도 늘리는 등 대게자원 보존에 힘을 쏟고 있다면서 지난 2018년도부터 울진대게자원 보존을 위해 ‘TAC(총허용어획량제) 운영과 위판량 쿼터제도 실시하고 그물도 바닷물에 쉽게 녹는 생분해성 그물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최근 3~4년 전에 비해 30% 이상 어획량이 줄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선주는 대게가 잘 안 잡힌다면서도 어렵게 잡은 게의 절반 가까이를 바다로 던진다.

어족자원보호를 위해 체장 9cm 이하의 어린 게와 암게는 무조건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첫 번째 그물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선원 두 명은 선미로 가서 엉킨 그물을 풀어가면서 차곡차곡 그물을 쌓고 있다

이후 10여 분간 이동한 동환호는 다시 기대 속에 두 번째 그물을 양망기에 걸었다.

이번에는 초장부터 분위기가 좋았다. 양만기의 속도를 조절하던 선원이 서툰 한국말로 박달대게가 올라왔어요라며 선원들에게 들어 보인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찬 황금빛의 박달대게는 일반대게에 비해 가격도 2~3배 비싸다.

냉수성 어종인 대게의 선도유지를 위해 바닷물과 비슷한 온도인 3도 전후에 맞춰진 파란색 수조에도 서서히 대게가 차기 시작했다. 수조 앞에서 대게 분류작업을 하는 김 선주 등 뒤 엷은 구름 사이로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올랐다.

두 번째 그물작업을 마친 후 이번에는 정리한 그물을 바닷 속에 집어넣는 투망작업이 시작됐다. 좁은 배위에서의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특히 투망작업은 앞뒤, 옆 선원들 간의 호흡이 맞지않거나 조금의 부주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바다에 부표를 던지거나 조류에 그물이 떠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형 에 가득넣은 돌무더기를 바다 속으로 밀어넣는 작업은 경험이 많은 선임 선원이 주로 한다. 이때 혹이라도 줄에 발이 걸리면 그대로 바다에 빨려 들어간다. 이 날도 투망작업 시 신입선원이 줄 옆에 서 있다가 김 선주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

너 한국에 돈벌러와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물고기 밥이 되고 싶냐. 한번만 더 정신 안차리면 집으로 돌려보낼 거야모두들 다시한번 긴장의 고삐를 죈다.

두 번째 투망작업도 끝을 보일 무렵 아침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 올랐다.

드디어 선미에서 기다리던 대게파티가 벌어졌다. 아무리 조심해서 그물작업을 해도 발이 떨어져 상품성이 없는 대게는 그대로 끊는 물속으로 들어가 선원들의 굶주린 배를 채운다.

김 선주는 기자에게 그동안 내 배에 탄 기자, PD들 대부분 멀미했는데 곽 국장은 대단하시네라며 배에서 내릴 때 가져가지는 못해도 여기서는 한번 싯컷 드셔보라며 족히 10마리는 넘어보이는 큰 솥을 내 앞에 내려 놓았다.” 정말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니들이 게맛을 알아하며 게눈 감추듯 한 솥을 거뜬히 비웠다. 사진과 기사를 좀 더 신경써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침 식사 후 순조롭게 3번째 그물작업과 투망작업 후 마지막 부표를 던지는 것으로 이날의 조업은 모두 끝이 났다.

동환호 이상호(53) 선장은 나도 내 배를 가지고 30년 가까이 바다에서 살았다. 김 선주하고 같이 일한지는 일 년도 채 안되었지만 선배 선장으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며 바닷일이라는게 워낙 위험해서 가끔 큰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김 선주가 부르룩해도 뒷끝은 없다. 선원들에게 잘해준다고 말한다.

귀항 길에 대게를 넉넉히 넣어 대게라면을 끊였지만 아침에 대게 찜을 원없이 먹어서인지 생각보다 대게라면은 남들이 이야기하듯 그리 충격적인 맛은 아니었다. 

15시 경 무사히 죽변항에 귀환했지만 선원들의 일과가 끝난 건 아니었다. 선원들은 찢어지거나 엉키 그물을 손질하고 일부 선원은 다음 날 아침 경매에 들어갈 700여마리 대게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배에 남아 있는다. 민속대명절을 며칠 앞두고여서 그물 손질 후 김 선주는 오늘 저녁 삼겹살파티, OK” 제의에 선원들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죽변근해 채낚기 선주협회장 김순명의 70년 삶-

아빠는 언제나 새벽이면 바다로 나가셨어요. 경상도 사나이시라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르고 속정이 깊은 분이세요, 고만 쉬시라 해도 아직은 뛸만하다며 일터로 향하세요큰딸 김소정(45) 씨는 아버지 김순명(70·죽변근해 채낚기 선주협회장)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울진 앞바다에 인접한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김 씨는 15세에 일찌기 부친이 돌아가시자 학업도 포기하고 장남으로 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라고는 집 앞의 조그만한 농토가 전부였다. 53녀의 가장으로 김 회장은 묵묵히 동생들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다. 당시는 살기가 워낙 힘들어 동생들을 충분히 못 먹이고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25세가 되던 해 4살 아래인 아내 장옥순 씨를 만나 성탄절인 1225일 식을 올렸다.

결혼 후 농사일을 접고 용접공, 외양선원 등을 전전한 김순명 회장은 30세 되던 해, 처삼촌에게 목돈 3천만 원을 빌려 2톤짜리 배를 사고 죽변항에 새로운 인생의 닻을 내렸다. 죽변에 정착하면서 3째 딸을 얻었다. 이후 아들을 낳고 부엌에 딸린 단칸방에 6식구가 올망졸망 살면서 희망을 키워나갔다.

김 회장은 한눈팔지 않고 거친 바다 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2톤에서 시작한 어선도 7차례 늘려가면서 지금의 20톤급으로 키웠다. 대게잡이를 시작하면서 4남매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켰고 7~8번의 셋방살이 끝에 2층짜리 집도 번듯하게 지었다. 대게잡이는 돈이 되는 만큼 매 순간 위험의 연속이었고 낮밤 따로 없이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야했다. 김순명 선장이 거칠고 매서운 겨울 바다와 싸우는 사이 부인 장옥순 씨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항구에서 종일 그물 손질을 하고 위판장에서 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보탰다.

김 회장은 2년 전부터 5명의 베트남 선원들을 자신의 집 옆에 방을 마련해주고 함께 지낸다. 고향에 가족과 아이를 두고 온 선원들은 20세 초반부터 40살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베트남 선원들 대부분이 한국말을 몰라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손짓발짓 그리고 눈빛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함께 뱃일 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김 회장은 대부분 베트남 선원들이 착하고 성실하게 일을 잘하다고 칭찬한다. 김 선주 부부를 베트남 선원들은 서슴없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른다.  속 깊은 김 회장은 베트남 선원들을 맞으면서 자신의 집 뒤에 숙소를 직접 지어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안주인인 장옥순 씨 역시 멀리 타국에서 온 이방인 젊은이들을 위해 먹거리를 비롯 불편한 점이 없는지 늘 따뜻하게 보살핀다.

베트남 중북부 하딩이 고향인 만드그(28) 선원은이곳에 처음와서 오징어 배를 타다가 동환호로 옮긴지 1년 반 됐다. 뱃일이 고되지만 열심히 돈을 모아 고향에 돌아가서 아내와 멋진 내 집을 짓는게 꿈이라며 아버지, 어머니(김회장 부부)가 자식처럼 잘 돌봐준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어느새 나이가 70에 접어들면서 새벽 2~3시에 일어나 바다에 나가야하는 대게잡이가 힘에 부쳐 선장을 두고 배를 운영하지만 그래도 김 회장의 마음은 늘 바다에 있다.

지금도 일손이 부족하거나 선장이 자리를 비우면 언제든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간다.

김 회장은 아직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지. 용돈 받아서 쓰고 싶은 생각은 없어라며 우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야 아이들도 본을 받지, 앞으로는 시간을 내서 평생 나와 자식들 뒷바라지에 애쓴 아내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야지라며 칠순의 열혈 바다사나이는 멋쩍게 웃었다.

 

울진=·사진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드론 촬영=왕고섶 사진가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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