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은행권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연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은행에 요구하고 있지만 내수경기 악화로 부실이 은행으로 전이될 우려가 커져서다. 여기에 저금리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지난해 4분기부터 꺾인 실적은 이러한 부담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최근 만난 은행권 고위관계자는 “은행 실적은 지난해 4분기부터 꺾였다. 그동안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 결과 실적 상승세를 유지해 왔으나 이제는 어렵게 됐다”며 “정부에서는 소상공인이나 중기(중소기업)대출을 늘리라고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내수경기가 악화돼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상은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의 가구원 2인 이상 일반 가구의 사업소득은 89만2000원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2.2% 감소했다. 이는 5분기 연속 감소로, 지난 2014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도 4분기 연속 감소에 그쳤다. 은행들은 코로나19사태가 올해 들어 본격화된 만큼 내수부진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경영악화가 장기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팔 걷고 지원했지만 더 커지는 요구=은행들은 이에 자영업자는 물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펼치고 있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모두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1~1.7%의 우대금리를 적용해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기존 대출에 대해서는 만기가 도래했을 경우 원금 상환 없이 만기를 연장해 주고 있다.
여기에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은 정부의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해 은행 소유 건물에 입점한 소상공인과 영세 사업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 월 임차료의 30% 가량을 감면해 주고 있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이 원하는 은행의 역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있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코로나19 피해에 따른 지원의 경우 은행 담당자에게 부실에 대한 면책권을 주겠다며 부실에 신경 쓰지 말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착한대출’을 언급하며 은행이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무이자 대출에 나설 것을 종용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0일 열린 정무위원회에서 한 여당의원은 “대한민국 시중은행 어느 하나라도 ‘착한 임대료’ 처럼 ‘착한 대출’을 해주겠다는 곳이 필요하다”고 발언했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에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손실난 대출금, 정부가 보전해 주나요?=은행권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의 목소리에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내수부진에 따라 부실화되는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가 은행 직원에 대해 면책권을 준다고 하지만 고객의 돈을 바탕으로 영업을 하는 은행 입장에서 부실에 따른 원금 손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무이자대출 역시 자금조달과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할 때 손해를 보고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행 관계자는 “내수부진에 따라 부실율이 올라가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정부가 나중에 보전해 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정부와 정치권의 요구는 고객의 돈을 가지고 하는 영업에서 손해를 감수하라는 의미와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점도 은행이 당정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은행의 실적이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따라 하락폭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0.25%p 인하되면 은행은 수천억원의 순익이 감소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실적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어디까지 지원에 나서야 하는지 고심되는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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