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마스크 때문에 혐오스런 사람이 됐다"

"난 마스크 때문에 혐오스런 사람이 됐다"

속속 구매 포기하는 취약계층들 한탄 속 비공개 예약판매까지 판쳐

기사승인 2020-03-06 05:00:00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외근이 많은 직장인 A씨(39, 남)는 5일 하루 종일 당혹스러움을 느껴야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면 고개를 돌리고, 명함을 내밀면 훌쩍 물러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당혹감은 싸늘한 눈초리로 “마스크는 이제 에티켓”이라고 쏘아부친 상대의 말 한마디에 정부를 향한 불만으로 바뀌었다.

A씨와 같이 거부감과 혐오감 어린 눈초리를 받아야 했던 이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5일 내놓은 3번째 마스크 수급대책으로 방역 물품을 구하기 어려워져서다.

정부 대책은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의 1일 생산량과 판매량 신고를 의무화하고, 추가인력을 지원해 1일 총생산량을 약 1000만매에서 1400만매 내외로 늘리며 1인당 구매수량은 일주일에 2매로 제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스크 재사용을 권고하는 한편, 구매 실명제와 5부제를 도입해 1인당 구매수량도 통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6일부터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을 들고 약국에 가야한다. 구매할 수 있는 마스크도 8일까지는 1회 1인 2매가 전부다.

‘구매 5부제’가 시행되는 9일부터는 출생연도의 끝자리가 1과 6인 사람은 월요일, 2와 7인 사람은 화요일, 3과 8인 사람은 수요일, 4와 9인 사람은 목요일, 5와 0인 사람은 금요일에만 구매가 가능하다. 주말에만 구매자 제한이 없다. 일주일 구매총량은 2매로 제한된다. 

단 우체국과 농협의 경우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16일 이전까지는 구매 실명제와 5부제가 적용되지 않아 매일 하루 1인 1매에 한해 구매가 가능하다. 당연하지만 구매실명제 도입으로 대리구매도 장애인을 제외하고 모두 제한된다.

부모가 자녀의 마스크 대리구매도 안 된다. 미성년의 경우 여권이나 학생증,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고 법정대리인과 동행해 법정대리인의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을 대조해야 구매가 가능하다. 장애인도 대리인이 장애인등록증을 지참해야 마스크를 살 수 있다.

◇ 문재인 정부의 3번째 마스크 공급약속, ‘또’ 깨지나=하지만 고령자·만성질환자·거동불편자·임산부는 물론 마스크가 공급되는 시간 때에 직장 등에 메여 이동이 제한되는 이들에게 정부의 대책은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실명제’와 ‘5부제’로 대변되는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개인의 마스크 수급률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새로운 대책에 따르면 현재 마스크 생산량은 1000만매 내외다. 이 중 800만매를 공적 공급물량으로 확보해 560만장을 약국에, 40만장을 우체국과 농협에서 1매당 1500원에 판매할 예정이다. 남은 200만장은 의료기관과 감염병 특별관리지역, 취약계층, 학교 등에 보급한다.

전국에 약 2만3000개소인 약국으로 560만장이 균등하게 나뉘어 공급된다고 가정할 경우, 단순계산이지만 1개 약국에 공급되는 마스크는 243개 정도다. 1인 1매로 판매가 제한될 경우 하루에 약국 1곳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 이들이 243명인 셈이다.

이정도 물량으론 판매개시 5~10분 만에 품절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4~5시간씩 기다려 줄을 서더라도 지금처럼 태반이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기지역  아파트단지 주민은 “단지에 약국이 2개 있다. 그런데 수천명이 산다. 500개로 누구 코에 붙이냐”고 토로했다. 여기에 “일부 약국은 몰래 예약자를 받아 그들에게만 판매한다”며 귀띔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지역배분에 있다. 경상북도에 속한 한 우체국 직원은 “매일 마스크 잔여수량을 파악하는데 간혹 소량이지만 일부 시골지역은 마스크가 남는 날도 있다”며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인구대비 물량공급이 이뤄져야하는데 이를 계산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최대한 불만이 없는 공급기준이 마련돼야한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대리수령 금지문제도 지적됐다. 이 우체국 직원은 “사실 마스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하지 않는 고령의 노인들이다. 이들이 몇 곳이든 몇 날이든 마스크를 모아 도시의 자녀들에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구매하면 절반 이상은 보내는 것 같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이 없을 뿐더러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치기도 했다.

◇ 취약계층, 마스크 대책에서도 소외=취약계층을 위한다는 200만장의 배분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의료기관과 감염병 특별관리지역, 학교를 포함해 배분물량을 잡았다. 그렇지만 당장 하루에도 1명의 의료인이 몇 장씩 사용해야하는 의료기관과 대구·경북지역에서 소모되는 물량만 따져도 대부분의 마스크가 소모되는 실정이다. 취약계층에게 보내질 수량이 거의 남지 않는 셈이다.

그마저도 어떤 이들에게 얼마나 보낼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정부는 고령자의 기준을 만 60세로 할지, 만 65세로 할지, 임산부와 영·유아는 포함시킬지, 장애등급은 없지만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사회적 취약계층은 편입시킬 것인지 등에 대한 기준을 내놓고 있지 않다. 만약 이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200만장은 턱 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취약계층으로 분류돼 마스크를 배급받은 이들이 약국 등 공적공급처에서 마스크를 구매하는 것은 또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등 세부적이고 현실적인 방안들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의당은 정부의 마스크 수급대책에 구멍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선공급기준을 세워 100% 공적배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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