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어려울 땐 상생이 아닌 상극 되더라.”
한 면세업계 관계자가 최근 임대료 인하에 머뭇거리는 인천공항공사를 두고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텅 비어버린 인천공항 만큼이나 그의 말에도 헛헛한 공허감이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면세업계는 존폐기로에 몰려 있을 만큼, 전례 없던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는 탓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해외 입국 여행객은 물론, 출국하는 내국인도 사라졌다. 시내 면세점은 물론, 특히 공항 면세점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현재 인천공항 이용객은 무려 1만명 이하로 급감했다. 이는 공항이 문을 연 200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여행사뿐 아니라 면세업에서도 연일 곡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주요 시내 면세점을 포함해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게 업계의 호소다. 면세 업계는 인천공항의 임대료라도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공사 측은 여전히 ‘정부의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요지부동이다. 적어도 면세 업계에서 ‘착한 임대인’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물론, 정부와 인천공항공사의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에 한해서만 25%씩 6개월 간 임대료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시티플러스와 그랜드면세점 단 두 곳뿐이다. 인천공항 임대료의 90% 이상을 부담하는 롯데, 신라, 신세계는 물론, 중견기업인 에스엠면세점과 엔타스듀티프리도 임대료 감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면세 업계에선 이를 두고 '생색내기 정책‘이라고 꼬집는다.
얼마 전에는 에스엠면세점이 이 같은 ‘탁상행정’에 불만을 드러내며 면세 특허권을 아예 반납하겠다고 했다. 중견 면세점인 에스엠면세점은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고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 반납을 결정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어렵던 일이다. 사측은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돼 중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더 악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특허권 반납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에스엠면세점은 기존 서울점 정직원들을 인천공항에 재배치할 예정이다. 이렇게 된다면 기존 인천공항점에서 일해 온 협력사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공산이 크다. 정부와 인천공항공사가 머뭇거리는 동안 그 피해가 고용 상실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빗발치고 있다.
대기업 면세점도 인천공항에서 임대료로 인한 적자에 속앓이를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현재 롯데와 신라, 신세계 면세점이 납부해야 하는 월 임대료는 83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에도 적자를 봤지만, 지금은 한 달 매출의 무려 2배가량을 임대료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영업시간 단축과 휴업 등 자구책으로 버텨가고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결국 구조조정도 불가피 할지 모른다.
그동안 인천공항공사는 ‘상생’이란 말을 강조해 왔다. 공항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도 앞장서 왔다. 지난해 7월에는 '인천공항표 공정경제 모델'을 제시하며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한 ‘동반성장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사실 이런 상황을 비춰보면, 현재 정부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공사의 모습은 다소 이해가 어렵다. 모두가 잘살고, 즐거울 때 외쳤던 상생은 그저 기만일 뿐이다. 진짜 상생은 힘들 때 외쳐야 빛을 발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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