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긴급재난지원금, 아쉬운 제도설계

[기자수첩] 긴급재난지원금, 아쉬운 제도설계

기사승인 2020-05-15 05:00:00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인 확산에 따른 경제여파가 심각하다. 공장은 물론 건설현장, 중·소규모 업장 등 온라인·중계 기반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장주체가 일손을 놓았다. 심지어 수출입은 물론 농수산 업종까지 타격을 받아 매출이 급감했다.

고용불안도 심화됐다. 산업현장의 경영악화가 임금하락을 넘어 대량해고사태로까지 이어지는 실정이다. 기업의 채용은 연기되거나 취소됐고, 감원에 휴·폐업도 이어지고 있다. 13일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구직 포기자를 뜻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1년 전보다 83만1000명 늘었다. 

취업준비생과 아르바이트 등 불완전 고용상태까지 실업자로 간주한 ‘확장실업률’은 14.9%로 지난해에 비해 2.5%p가 더 늘었다. 만15~29세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26.6%에 달했다. 이는 2015년 통계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현금성 직접지원에 나섰다. ‘긴급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국민에게 현금 혹은 단기간에 소비해야할 현금성 자산을 나눠줘 소비를 촉진함으로써 시장경제의 활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구당 40~100만원까지 가구원 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지난 11일부터 본격 지급됐다. 13일 자정을 기준으로 572만900가구가 신청했다. 지급금 총액은 3조8377억원에 이르렀다.

문제는 ‘속도’에 집중해 ‘내실’을 잃었다는 점이다. 행정 편의적 제도설계로 보완에 보완을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곳곳에 구멍이 존재하고 성글다. 당장 지급기준이 장애요인이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기준은 3월 29일 기준 세대주 주민등록상 주소지 기준이다.

3월 말 이후 주소지를 타 지역으로 옮긴 경우 주소지를 옮기기 전에 거주했던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재난지원금을 받아 사실상 사용에 제한이 생긴다. 더구나 혼인·이혼·출생·사망 등 가족관계가 변동될 경우에도 4월 30일까지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 한해 변경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3월 말 제주에서 서울로 주소지를 옮긴 경우 지급받은 재난지원금을 제주지역까지 가서 사용하거나, 5월 1일 이후 출생한 신생아가 가구원에 포함되지 못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차별이 발생한다. 이혼소송 중이거나 사실상 이혼상태인 가구원의 분리지급도 제도개정을 통해 지난 12일부터 가능해졌다. 

게다가 가구원수의 증가에 따른 1인당 지급금액도 줄어들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1인 가구의 경우 40만원을 받지만 2인 가구일 경우 1인당 30만원, 4인 가구일 경우 25만원으로 줄어든다. 만약 5인, 6인 가구로 늘어날 경우에는 20만원, 16만여원으로 금액이 계속 줄어든다. 상품권, 용처가 제한된 지역화폐 등 지급방식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여기에 정작 ‘긴급’이라며 지급을 서둘렀지만 앞선 문제를 비롯해 여러 제한사항들로 7~8월까지 지급된 지원금을 사용하지 않거나 지연해, ‘긴급수혈’로써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연출될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정부는 ‘사실상 이혼’에 대한 대책을 제외하면 개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코로나19 경제 위기가 3개월여 지나면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국민들이 많다”며 “공과금이나 통신요금·신용카드대금·자녀교육비 등 현금이 절박한 국민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현금이 요긴하다”고 현금지급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아울러 “긴급 재난지원금의 지급처와 사용방법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며 “국민들이 현재 거주지에서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지역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3일 라디오에 출연해 “여러 사람이 같이 대가족으로 사는 것도 문제냐. 1인당으로 차라리 똑같이 주라”며 지급의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분명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가계형편을 지원하고, 가계소비를 활성화시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제도로 보인다. 다만 ‘긴급’이라는 목적에 너무 매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부디 대통령이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를 정부가 실현해주길 바란다.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야근이 일상이 된 공무원들의 힘든 어깨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는 듯해 안타까움도 있지만,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며 ‘신청일’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산출해 지급하는 체계를 도입한 것을 따라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태아도 임부등록이나 출산지원카드 등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정부의 좀 더 세심한 고민과 배려를 기대해본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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