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환자 10명 중 7명은 5년 이상 생존하는 시대다. 의학의 발전이 ‘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을 바꾸고 있지만, 암으로부터 벗어난 생존이 모두 일상 회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삶의 바탕을 다지는 시기에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던 청년들은 치료 후에 출발선에 다시 서야 한다. 암을 극복한 20~30대를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보건복지부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간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2.9%에 이르며, 전체 암유병자는 258만8079명에 달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약 159만명이 암 진단 후 5년 이상 살아간다. 그러나 많은 암생존자가 치료 후에도 피로, 통증, 수면장애, 림프부종 등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다. 대인관계가 단절되거나 직장 복귀가 지연되는 등 사회적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특히 청년기에 암을 진단받은 경우 취업 같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놓쳐 사회적 성장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의 ‘2008~2022 암환자 통계’에 따르면 15~39세 암환자는 65세 이상 암환자보다 우울·불안을 2.6배 더 갖는다.
청년 암생존자에 대한 지원 정책은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소아 암환자는 암생존자 통합지원체계를 통해 별도 관리되고 있고, 고령층은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병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이뤄진다. 반면 청년 암생존자는 비영리재단, 기업, 학회 등 민간 지원에 매달리고 있다.
삼중음성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양측 유방전절제술과 수십 번의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은 김지희(30대·여·가명)씨는 1인 기초생활수급가구로 생활하던 중 한국BMS제약과 밀알복지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리부트(Reboot)’ 프로그램을 접해 이용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암을 이겨낸 저소득 청년의 사회 복귀와 자립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리부트는 치료를 마친 19~39세 암생존자를 선발해 개인별 상황에 맞는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현재 9월10일까지 8기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7기 참가자인 박정원(30대·여·가명)씨는 갑상선암 수술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조리 교육 지원을 받은 뒤 샐러드 매장에서 근무하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박씨는 “사회 복귀가 쉽지 않아 불안감이 컸는데, 청년 암생존자 지원 사업을 통해 지지하는 존재가 있다는 든든함을 느꼈다”면서 “마음을 열고 다른 이를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암을 극복한 청년이 사회 일원으로 자리 잡아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관리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윤정 국립암센터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장은 “청년 암생존자는 치료 기간 동안 그 또래가 누리는 학습과 사회적 경험을 제한 받는다”며 “암을 경험한 사실을 알려야 할지, 숨겨야 할지 고민하면서 고립에 빠질 수 있다”고 짚었다.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는 암생존자의 고용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는 소아 암을 딛고 일어선 청년 암생존자 현황 조사를 기획하고 있다. 장 센터장은 “암을 진단받은 것만으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경력이 단절될 수 있는데, 이를 개인이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의료진과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