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이 어떻게 오가는 줄도 몰랐다. 햇살은 얼마나 밝고 따뜻한지, 꽃은 얼마나 예쁘게 피었다 졌는지도 몰랐다. 계절은 시간과 함께 바뀌는 것인데 이제 보니 나는 그걸 공간으로만 느끼고 살았나 싶어진다. 봄은 꽃길 속에서 봄이구나, 가을은 단풍과 낙엽 속에서 가을이구나, 하며…. 그런 점에선 집에 박혀 지내던 이번 봄, 나는 그 시간과 공간을 거의 놓쳐버린 셈이다. 액자처럼 봄을 창밖에 걸어놓고 바라만 보았다.
봄비 그친 시장 골목을 지났다. 그릇가게 옆에 야채 가게, 건어물집 옆에 정육점, 나물좌판 앞에 생선가게 또 그 옆에 무엇과 무엇…. 주부 노릇이 몇십 년째인데도, 나는 시장에선 모르는 것투성이다. 대형 마트처럼 상품마다 이름표가 붙어있지도 않지만 이름을 듣는다고 알지도 못한다. 간재미는 무엇이며 간고등어와 자반고등어는 어떻게 다른지, 다시마에 귀다시마가 있다니 코다시마 눈다시마도 있을지…. 참두릅과 땅두릅은 뭐가 다르며, 똑같아 보이는 나물은 무엇이 참나물이고 무엇이 들나물인지…. 그러고 보면 시장엔 참조기, 참두릅, 그런 참 무엇들도 많다. 참말 맛나서 참인지, 참으로 구하기 어려워서 참인지….
모르는 게 많으니, 나는 본의 아니게 가게할머니를 괴롭힌다. 이건 뭐고 저건 뭐냐고 자꾸 물어댄다. 어느 것이 참으로 좋은지 궁금해한다. 얘도 쟤도 다 맛있다고 말한 할머니도 두루두루 무치고 볶아서 비빔밥을 하라며 신나게 전부 싸줄 기세다.
커다란 아파트단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골목 바닥에 진을 친 장터에서, 참 무엇들을 보며 문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본다. 그럼 또 참 세상은 어디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잘 사는 것인지, 저 크고 높은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 보며 사는 건 참으로 행복할지, 종일 비좁은 시장바닥을 지키다 천막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살짝 쳐다볼 때는 참 어떤 마음일지…. 그 속에 참사람은 누구이고 얼마나 될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거야말로 당당히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어 나는 생각을 멈춘다. 자신이 없으니 빨리 시장의 참 무엇들 속에서 내빼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계산을 하는데 옆에 개두릅이란 것이 보인다. 그건 또 어쩌다가 개무엇인지, ‘개’자가 붙은 걸 보면 좀 나쁜 건가 싶어 또 물어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원찮은 주부인 내가 이젠 개두릅을 만만히 보자 할머니가 손사래를 친다. ‘끝물이라 그렇지, 영양은 더 많다’며 ‘고추장 찍어먹기엔 개두릅이나 딴 두릅이나 다 똑 같다’고 덧붙이신다. 뜬금없이, 나는 두릅의 세상이야말로 개두릅도 참두릅도 땅두릅도 저마다 당당히 함께 사는 참 좋은 세상처럼 느껴진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좌판과 나물의 풋풋한 생기, 활기찬 생선비린내를 느끼자 소박한 자리엔 역시 순한 햇빛이 축복인 듯하다. 오랜만에 벅적한 장에 나와서인가, 같이 이즈음의 어려움을 겪어서인가. 꽃보다, 사람이 봄이란 생각도 든다. 장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러 나왔나 싶고, 여기서 물건을 사면 싱싱한 봄도 한 자락 얹어갈 것 같다. 꽃구경보다 쏠쏠한 장구경을 하며 나는 문득 그런다. 참 무엇으로 살고 싶구나. 두릅처럼 살고 싶구나. 시장이 내게 ‘그러는 넌 누구냐’고 ‘참으로 잘 살고 있냐’고 딴지를 건다. 자꾸자꾸.
이정화(주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