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이전, 계획만 20년째 되풀이한 전말은?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계획만 20년째 되풀이한 전말은?

IMF·그린벨트·주민 반발까지 3연타

기사승인 2020-05-26 03:01:00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국립중앙의료원의 이전이 ‘또 다시’ 논의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국방부가 소유한 중구 방산동 일대 미군공병단 부지로 신축 이전하자는 제안을 발표하면서다. 박 시장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전과 동시에 ‘부설 국립중앙감염병 전문병원’과 제대로 된 ‘국립외상센터’를 함께 건립해 주실 것을 보건복지부와 국방부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립중앙의료원의 이전 계획은 수차례 좌절됐다. 경제·사회·환경 등 갖은 분야에서 번번히 복병을 마주쳤다. 이사 계획만 되풀이하는 국립중앙의료원 비극의 전말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단

국립중앙의료원은 한국전쟁 이후 62년간 현 위치를 지켜왔다. 전시에 우리나라가 제공받은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의료지원을 토대로 지난 1958년 UN과 우리 정부가 함께 중앙의료원을 설립했다. 중앙의료원은 1960년 국립의료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1968년부터 운영권이 우리 정부에 이관됐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2010년부터 특수법인으로서 현 명칭을 사용했다.

▷전개

국립중앙의료원의 이전 논의는 지난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초 쟁점은 응급의료체계 확립과 공공의료 강화였다. 지난 1997년 보건복지부에서는 중앙의료원을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전국 어디서나 육로를 통한 접근이 쉽고, 헬기 운항도 용이한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응급의료·외상·중독 분야를 아우를 수 있도록 기능을 확충한다는 목표였다.

이 같은 계획은 공공분야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감행되면서 구체화되지 못했다. 1998년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공공분야 경쟁력을 높이고 예산 낭비를 최소화 하는 정책을 폈다.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는 2000년까지 국가일반공무원 1만7612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국립의료원과 운전면허시험장을 책임경영행정기구화 하고, 지방산림관리청 국유림관리소와 국립공원 관리공단을 통합하는 방법으로 3000여명 인원 감축을 추진했다. 

▷위기

두 번째 이전 논의는 지난 2003년 2월 나왔다. 당시 복지부는 대학병원 수준의 시설·인력을 갖춘 국가중앙병원을 설립해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을 높인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 후보지도 낙점됐다. 앞서 2001년부터 서초구에서는 화장장 건설을 두고 정부와 주민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원지동에 화장장과 함께 기능이 확충된 국립의료원을 위치시켜 ‘종합의료타운’을 구축한다는 타협안을 낸 것이다.

이번에는 행정상 잡음이 발생했다. 원지동 부지는 원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었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화장장·추모공원 설립을 조건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결정했다. 그런데 해당 부지에 그린벨트 해제 목적과 맞지 않는 종합의료타운이 들어선다면, 행정 일관성이 훼손된다는 것이 건설교통부 입장이었다. 이듬해 11월 그린벨트 구역을 당초 해제목적과 다르게 사용할 경우, 해제조치가 철회된다는 내용의 ‘그린벨트 사용목적 등에 관한 개발제한구역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이전 계획은 무산됐다.

▷절정

세 번째 계획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거치며 재점화 됐다. 국립의료원은 2010년 특수법인화를 계기로 국립중앙의료원이라는 지금의 명칭을 얻었다. 이후 2014년 복지부는 서울시와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감염병 전문병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계획도 추진력을 얻었다. 정부는 국가방역체계의 주축을 마련하기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을 원지동으로 신축 이전하고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역할을 수행토록 할 방침이었다.

이 계획은 서초구 주민 반발로 가로막혔다. 서초구 측은 지역 주민들이 질병 감염 위험 때문에 불안해한다며 원지동 부지 내 설치될 중앙감염병병원 건설에 반대했다. 당시 서초구에서는 위험부담에 대한 보상으로 원지동 부지 주변 토지의 종상향을 요구하는 여론도 높았다. 화장장과 감염병전문병원 등 기피시설이 들어서면서 떨어질 토지가격을 종상향으로 보전해달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서울시 도시계획과의 검토 결과에 따라 관철되지 않았고, 주민 반발은 계속됐다. 

원지동 부지 주변 환경도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6월에 발표된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 원지동 부지는 소음환경기준에 부적합해 2층 이상의 병원 건물은 세울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계획이 약 20년간 표류하는 동안 경부고속도로가 왕복 12차로 규모로 확장돼 원지동 부지와 가까워진 탓이었다. 국토교통부는 경부고속도로를 방음터널로 덮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말

계획과 좌절을 지난하게 반복한 국립중앙의료원은 결국 이전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원지동 이전을 위해 꾸렸던 신축이전TF팀도 지난해 9월 해체했다. 서울시와 복지부 사이에서 더이상 행정력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원지동 부지를 선정했던 2003년과 달리, 현재 서초구와 그 일대는 의료서비스 공급 과잉 지역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소음 기준 충족을 위해 투입해야 할 2000억원대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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