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라이엇 게임즈가 주최한 ‘미드 시즌 컵(MSC)’의 주인공은 중국 프로리그(LPL)였다. 지난 달 31일 열린 ‘탑 이스포츠(TES)와 펀플러스 피닉스(FPX)간의 결승전은 TES의 3대 1 승리로 마무리 됐다. 국제대회에서 선전을 각오했던 ‘리그오브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소속 4팀(T1‧젠지e스포츠‧드래곤X(DRX)‧담원 게이밍)은 결승 무대를 밟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이제는 정말 중국과의 격차가 커졌다’는 탄식이 업계 안팎을 잠식하고 있다.
▲ 줘야 될 것도 안 주려고 한 LCK, 장점이 사라졌다
LCK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을 석권하는 등 세계 LoL e스포츠계를 주름잡았다. LCK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던 건 ‘줄 건 줘’로 대표되는 철저히 계산된 경기 운영이었다. 한국팀들은 강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우위를 잡은 뒤, 줄 건 주고 취해야 할 때는 어떻게든 취하는, 확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빈틈없는 운영으로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중국에게 정상을 내어준 2018년을 기점으로 LCK의 승리 공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선 국내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 등으로 기량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면서 LCK 팀들이 라인전 단계에서부터 해외 팀들을 압도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난전‧교전 중심으로 변화된 메타에도 발맞추지 못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마냥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기보다 교전으로 변수를 창출하려는 해외 팀들의 플레이 스타일에 허둥지둥 무너졌다. 자연스레 LCK식 경기 운영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 MSC에서 LCK 팀들의 변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기는 했다. 지난해 국제무대에서의 거듭된 실패를 거울삼아 스타일의 변주와 더불어 유연한 밴픽 등을 선보였다.
하지만 내용물은 기대와 달랐다. LCK는 무색무취했다. 싸움도, 운영도 어느 것 하나 잘 해내지 못했다.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T1, 담원 게이밍, 드래곤X(DRX)는 초반 주도권이 있는 픽을 선택했지만 픽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크게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 추격을 허용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중후반 운영으로 초반에 얻은 이점을 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완벽에 가까운 중후반 운영으로 유명한 T1이 변주를 시도했다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제 풀에 전복되는 모습을 두 차례나 보인 점은 또 다른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 결국엔 실력 차이
여전히 티어‧메타 정리도 미흡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롤드컵에서 LCK 팀들은 대회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챔피언 티어 정리를 미처 매듭짓지 못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번 MSC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팀들은 ‘죽음의 무도 이즈리얼’을 높이 평가한 반면에 한국 팀들은 이즈리얼을 내주고, 이를 파훼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 애썼다. 하지만 바텀 ‘야스오’, ‘칼리스타’ 등은 결과적으로 이즈리얼의 존재감에 가려져 힘을 쓰지 못했다.
젠지와 TES의 준결승전 1세트는 LCK의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챔피언 선택에 제한이 없는 블라이드픽으로 진행된 1세트에서 TES는 ‘오버 파워 챔피언(OP)’으로 분류되는 ‘바루스’, ‘오공’ 등을 선택한 조합을 구성한 반면 젠지는 현 메타에서 사용하기엔 난이도가 높은 ‘카이사’, ‘노틸러스’로 바텀을 구성했다. 설득력이 없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메타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이는 FPX와 JDG가 준결승 1세트에서, FPX와 TES가 결승전 1세트에서 모두 ‘바루스’를 선택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밴픽에 대한 지적이 어디까지나 결과론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달리 말해 경기의 승패가 선수들의 순수 실력으로 갈린다는 의미도 된다.
메타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지 1세트 뿐 아니라 2세트, ‘모데카이저’를 바텀으로 돌린 3세트에도 젠지의 밴픽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다만 이를 실행에 옮길 기량이 부족했을 뿐이다. ‘카이사-노틸러스’를 중심으로 구상한 젠지의 그림이 라인전이라는 밑그림 단계에서부터 무너져 내린 것이 일례다. TES와 젠지의 경기를 보고 국내 팬들이 절망한 이유는 현격한 힘의 격차를 느꼈기 때문일 터다.
▲ LPL이 LCK를 넘었듯이
MSC가 개최된 것은 LCK로선 어쩌면 다행인 일이다.
MSC는 매해 열리던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취소되면서 ’한중전‘ 성격으로 기획된 일회성 대회다.
비록 이벤트적 성격이 짙은 대회지만, MSI가 취소된 상황에서 MSC마저 열리지 않았다면 LCK는 국제무대 경쟁력을 스스로 과대평가 한 채 롤드컵 무대를 밟았을 수 있다.
무려 4팀이 국제무대 경쟁력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의미 있다. 스프링 시즌 우승팀 1팀만 참가할 수 있는 MSI와 달리 MSC는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상위권 4팀이 참가 자격을 얻었다. 비록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무엇으로도 사지 못할 값진 경험을 했다.
수년간 2인자에 머물던 LPL은 LCK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LCK가 새로운 색깔로 단장할 때다. 벗어던져야 할 것은 벗어던지고, 취해야 할 것은 취하고, 가지고 가야 할 것은 꼭 끌어안고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오는 진통을 이겨내야 한다.
체질 개선은 쉽지 않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사무국이 객관적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동일한 방향성을 지니고 나아갈 때야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LCK라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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