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곳곳에 미지의 비행물체 12대가 나타난다. 까맣고 단단한 타원형의 이 물체는 그저 가만히 공중에 떠있을 뿐이다. ‘이들은 왜 지구에 왔는가’ ‘이들은 인류에게 해가 될 것인가 도움이 될 것인가’ 등 알 수 없는 존재에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는 물리학자 이안(제러미 레너)과 팀을 이뤄 외계인과의 대화에 나선다. 이들의 목적은 저들이 지구에 왜 왔는지 알아내는 것. 이들과의 대화가 차츰 가능해질 때쯤, 루이스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된다.
영화 <컨택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하다. 고립과 분열은 공멸로, 소통과 화합은 공존으로 가는 길이라고 영화는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루이스의 직업은 언어학자이며, 영화는 상당 시간을 외계생명체와의 소통 과정에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 내부를 비롯해 국제사회에는 공격적이고 비협조적으로 외계생명체를 대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어느 한쪽이 살기 위해선 한쪽은 죽어야만 하는 ‘제로섬게임’의 관점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제로섬게임은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수없이 존재한다. 최근 부동산업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제로섬게임은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이다. ‘집주인의 재산권 보호와 세입자의 주거 안정 중 어느 쪽이 우선돼야 할까?’가 논란의 쟁점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전월세도 집을 사고 팔 때처럼 국가에 바로 신고해야 하고(전월세 신고제), 재계약 시 멋대로 전월세 가격을 올릴 수 없고(전월세 상한제), 세입자가 원할 시 계약기간을 늘릴 수 있게(계약갱신청구권) 된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양측 모두 지키고 보호해야 할 가치라는 것에 의문을 표하지 않지만, 둘은 서로 마주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어느 한쪽에 무게가 실리는 순간 다른 쪽은 힘을 잃고 흔들리게 될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집주인 등 기득권층은 임대차3법이 공멸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 비판한다. 이들은 임대차 3법이 오히려 전월세 시장을 자극해 임대료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월세를 올려 받지 못하거나 계약을 강제로 연장해줘야 하는 집주인들이 인상분을 미리 받는 식으로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 또 월세 신고제가 과세 목적으로 활용될 경우 집주인들이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말 그럴까. 전문가들은 현재 대한민국 주거시장에는 ‘내 집 마련’이라는 선택권 밖에 없다고 말한다. 전월세는 한순간에 임대료가 오르거나 쫓겨날 수 있는 불안정한 주거구조인 만큼, 모두가 집을 사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수저가 아닌 이상 평생 돈을 모아도 내집마련은 멀기만 한 꿈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에서 중간값 주택을 사려면 중산층은 연 수입을 14.5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8년 12월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다. KB국민은행이 통계청의 4분기 가구소득(3분위)을 바탕으로 집계한 주택가격(서울 3분위 주택가격)의 PIR(소득대비주택가격배율) 결과다.
그래서 이들은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전월세 가격이 오를 것을 우려하기 이전에 해당 법안이 나온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 가격이 오름세인 상황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임대차 3법이 주거 안정에 있어 일종의 ‘처방전’ 역할을 할 거라 기대했다. 전월세라도 안정적으로 거주가 가능해진다면, 결과적으로 주거 선택권의 폭이 보다 넓어지게 되고,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공존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청년 주거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 정용찬 국장은 “임대차3법은 절대 공멸의 길이 아니다”라며 “현재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오를 경우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세입자들 입장에서 주거 안정을 이루기 위해선 집을 사야만 하는 선택권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고, 이 수요는 또다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컨설팅업체 도시와경제 송승현 대표도 “임대차 3법은 임대사업부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며 “분명 갑을관계가 아닌 평행선상으로 상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간에서도 적정한 인센티브가 현재 있어 물량은 축소되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갱신과정에서 지나치게 장기간 연장도입은 국내환경에선 아직 무리감이 있는 만큼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루이스는 마침내 외계생명체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소통은 ‘논제로섬게임’을 만드는 궁극의 무기라고 영화는 말한다. 집주인과 세입자, 어느 한 쪽도 없어서는 안된다. <컨택트>에서처럼 조금 느릴지라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공멸 아닌 공존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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