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엄마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몇 번째 아기인가를 해산하셨을 때, 우리 집에는 극성스런 쥐와 고양이가 살았다고 한다.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던 처녀는 엄마가 애를 낳고 드러눕자 갑자기 일이 많아졌다. 어디선가 쥐 소리만 나면 후다닥 집안을 뒤집어놓는 고양이와, 그에 놀라 뛰거나 넘어지거나 울어댔을 아기들에 짜증이 난 처녀는 잠시 고양이를 광에 가두어놓곤 잊어버렸다. 며칠 뒤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고양이를 찾았을 땐, 고양이는 그곳에서 굶어 죽어있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우리도 굶자며,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려야하는 엄마를 포함해 처녀와 아버지의 밥을 금하셨다. 그러곤 고양이는 영물이라 원한을 갚는 다더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 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고양이를 꺼려하셨다. 죄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자란 나도 늘 고양이가 무서웠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키우던 고양이 '와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종종 친구에게서 고양이 사진도 받았던 터라, 밤늦게까지 놀다 잠들곤 새벽에 깨어나지 않았다는 와키를 추억했다. 갓 태어난 유기묘를 임시 보호하기로 했단 말을 친구에게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과연 임시로 끝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와키란 이름까지 지었다기에 하마터면 '와 키우나, 싶어서 와키냐?'고 물을 뻔했다. 마침 나는 그 옛날, 딸만 내리 낳고 맹렬하게 아들을 기다리다 다시 딸을 낳은 뒤 '아이쿠' 하고 놀라 딸 이름을 ‘아이크’로 지은 이웃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식구와 정이 듬뿍 들은 와키는 그 집에 눌러살게 되었고, 하루는 친구네에 갔다가 꼭꼭 숨어버린 와키를 찾느라 함께 집을 뒤진 적이 있다. 나는 고양이가 겁났으나 광에서 굶어죽은 옛 고양이가 생각나 열심히 와키를 찾았다. 결국 와키는 드레스 룸의 스웨터들 뒤에서 발견됐고 유기묘 특성인지 곁을 잘 주지 않는다던 와키가 그날은 내게 몸을 비벼대며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고양이가 그저 따뜻하고 작은, 짠한 생명일 뿐임을 알았다.
와키는 사람으로 치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대로 앓지도 않고 밤사이에 사르르 자연사했다. 독야청청 종일 새침해서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고, 그르렁거림 없이 입도 무거웠고, 집에서만 자라 쥐를 잡는 살생도 피할 수 있었으니 죄라곤 지어볼 일도 없던 와키는 불교 신자인 그 집 식구를 생각하면 수도묘처럼 살다 갔다.
그리고 얼마 전엔 또 다른 친구의 고양이가 갔다. 백자로 빚은 듯이 유난히 고고한 모습으로 햇빛과 바람 속에 사뿐사뿐 털을 날리며 누구에겐 아기로, 어쩌면 누구에겐 동생이나 벗으로 마음을 주고받았을 그 고양이는 사람처럼 여러 날을 앓다가 병원에서 친구의 안녕 인사 속에 평화를 찾았다. 길지 않은 일생이었지만, 친구 아들이 만든 가족 인형에 제 모습도 당당히 박힐 만큼 이미 누릴 것도 남길 것도 그리고 겪을 것도 다 거친 일생이었을 것이다.
누구는 개를 반려로 삼고 누구는 스스로를 고양이 집사로 칭하는 시대가 되었어도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죽음 따위가 뭐 대수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죽음도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 다행스럽다. 무심코 스쳐 보낸 사소한 무엇이, 작은 목숨이었던 것을 깨달으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존재가 새롭다. 철마다 피고 졌던 꽃과 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해 바다를 건너 돌아온 새는 또 얼마나 기특한지, 심지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떠올리게 된다. 모두가 주어진 자기 시간만큼을 견디는 생명인 걸 깨달으면 나는 오늘을 좀 더 순하게도 간절하게도 보낼 수 있다.
잠 안 오는 밤, 별과 양을 세는 대신 죽은 고양이를 추모하고 내 곁을 스쳐간 많은 생명을 떠올린다. 기억의 부의처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피아노곡을 떠올리며 내가 알던 지난 이름들을 불러본다. 와키와 모찌와 그 옛 고양이, 강아지 단비와 해피와 테리, 그리고 누구와 누구와 누구… 결국엔 조카, 또 아버지 아버지….
이정화(주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