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집을 사야한다는 신호로써 규제를 받아들인다. 대책 발표 이전에 이미 소식이 시장에서 돈다. 해당 지역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바보라고 한다” (서울 송파구 거주민)
“토지거래허가제 구역이라니 억울하다. 주거이동제한도 있지만 이는 사유재산 침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토지거래허가 주체가 구청장인데 중앙정부가 이를 통제하겠다고 한다. 국회도 장악하고 시군구도 장악한다. 정치적 견제와 균형이 없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거주민)
정부의 6·17부동산 정책의 토지거래허가제를 놓고 규제가 적용된 지역 내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다.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토지거래허가제의 경우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정부를 포함해 전 국민이 투기세력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배현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은 25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6·17부동산대책 진단과 평가’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권대중 교수(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주임교수, 대한부동산학회 회장), 김현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제20대 국회의원), 두성규 박사(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인국 변호사(한서법률사무소 변호사)가 패널로 자리했다.
◇토지거래허가제 주민 반발=토지거래허가제가 지난 23일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송파구 잠실동(법정동 기준)에서 시행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4개 동은 최근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개발사업 등 호재로 집값이 급등하는 등 부동산 투기 거래 요인이 발생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지난 18일 토지거래허가제 지정 공고에 따라 닷새 뒤인 23일부터 내년 6월22일까지 1년간 효력이 발생한다.
토지거래허가지역에서는 주거지역에서 18㎡, 상업지역에서 20㎡ 넘는 토지를 살 때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허가가 필요하다.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지 않고 거래하다 적발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토지가격의 최대 30%에 해당하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거래 계약 자체도 무효가 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실거주 목적으로만 주택을 살 수 있고, 2년간 매매와 임대가 금지된다. 이에 따라 전세 보증금을 승계한 갭투자도 불가능하다. 집에 세입자가 있는 경우에는 매매 계약 후 2~3개월 뒤 잔금을 치르는 동시에 입주하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실거주 목적이라고 주장해도 전세 보증금을 이어받는 거래는 허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게 국토부와 서울시의 설명이다. 전세 계약 기간이 오래 남아 있는 경우에는 집주인이 사실상 주택을 매각할 방법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를 두고 규제 적용이 되는 지역 내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다 이들은 정부의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토지거래허가제 구역이라니 억울하다. 주거이동제한도 있지만 이는 사유재산 침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토지거래허가 주체가 구청장인데 중앙정부가 이를 통제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국회도 장악하고 시군구도 장악했다. 정치적 견제와 균형이 없다”고 우려했다.
김현아 의원과 권대중 교수는 ‘사후약방문’식의 규제에 대해 비판하며 ‘약발’이 얼마나 갈지 의문이라 비판했다.
권대중 교수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많을 때인데 둘을 동시에 억제하는 정책이 6.17 대책”이라며 “주택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이뤄져야 하며,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이뤄질 수 없다면 분산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대책은 과도한 억제 정책으로 그 약발이 얼마나 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비대위원은 정부가 개발 이전에 미리 대책을 시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제도의 적절성뿐만 아니라 타이밍도 문제다. 뒷북을 치고 있다”며 “지금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은 비정상적이다. 이 가격이 유지되는 건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거다. 그래서 정부가 이런 식의 ‘셧 다운 대책’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일단 감당이 안 되니까 시장을 멈추고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토지거래허가제는 위헌소지 충분”=이날 토론회에서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인국 변호사(한서법률사무소)는 “이번 토지거래허가제는 사실상의 주택거래허가제와 같다”며 주택거래허가제의 위헌성에 대해 꼬집었다.
정 변호사는 “주택거래허가제의 위헌성에 대해선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위헌성 문제가 있어서 백지화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지거래허가제란 이름으로 탈바꿈 된 것”이라며 “당초 토지거래허가제는 빈 땅에 투기세력 유입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번에 지정된 곳은 빈 땅이 아니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주택거래허가제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없다.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만 있다. 해당법률은 부동산 거래는 신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고, 토지에 국한해서만 허가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토지거래허가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토지라는 특수성 때문”이라며 “토지는 다른 재화와 달라서 수요가 늘어난다고 공급도 늘릴 수 없다. 즉, 공공성이 강해서 합헌적 요소 있는 것이다”라며 “반대로 아파트 등 주택은 건물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건물은 충분히 공급이 가능하다. 토지거래허가제 취지를 주택거래허가제로까지 적용하기란 어렵다”고 설명했다.
토지거래허가제도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12월 22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결정문은 “토지거래허가제는 사유재산제도의 부정이라 보기는 어렵고 다만 그 제한의 한 형태라고 보아야 하며, 생산이 자유롭지 않은 토지에 대하여 처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제한할 수밖에 없음은 실로 부득이한 것으로 토지거래허가제는 헌법이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는 재산권의 제한의 한 형태로서 재산권의 본질적인 침해라고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날 정 변호사는 재건축 아파트에 대해 실거주 2년도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정 변호사는 “기존에는 내가 소유한 아파트에 대해 재건축 이뤄지게 되면 조합원은 분양권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기존 조합원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2년간 실거주 안하면 분양권 박탈된다. 자기 소유 부동산에 대해 몰수당하는 성격도 있다. 이는 재산권 침해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 아파트는 40년 이상 되면 불편한 점이 많아서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분양권 놓치지 않으려면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 결국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 침해 우려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수요자? 투기꾼?=전문가들은 결국 ‘실수요 중심의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투기세력이라는 적을 만들어놓고 일련의 대책들을 내놓을 때마다 투기세력 범위 속에 새로운 대상을 포함시킨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김현아 위원은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계속 필요하다”며 “강남에 살면 집 한 채 자기 집에 사는데도 남들보다 유독 많은 거래세와 보유세를 내는지, 서울에서 집을 10년 가지고 있으면 10억 벌고 지방에 가지고 있으면 오르지 않는지 이 부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불평등의 문제가 부동산 시장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와 관련 있다고 본다. 좀 더 차분하게 부동산 시장을 바라봐야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정치권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두성규 박사(한국건설산업연구원)는 “현 정부 부동산 대책 발표 과정을 보면 매년 투기세력 범위를 확장시키는 게 특징”이라며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시작으로 9억원 이상 고가주택 소유자에 이어 이제 유주택자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박사는 “정부는 2017년도에 출범해 6·19대책과 8·2대책 내놓으면서 강남을 투기세력의 온상으로 얘기하면서 이념 대립 프레임을 설정했다”며 “다음해인 2018년도에는 9·13대책을 통해 강남 재건축에서 다주택자를, 2019년도 12·16대책을 통해선 고가주택 개념을 도입해 이를 소유한 사람들을 부도덕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엔 그 외 유주택자를 부동산 주택시장을 교란시키고 이득을 취하는 부도덕한 사람으로 확대했다”며 “고가 주택도 정부가 설정한 금액이다. 현재 시세 9억 이상이면 고가 주택이고 15억 이상은 초고가 주택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2000만원이 넘고 있다. 절반이상은 고가 주택 보유자란 소린데 (정부 말대로라면)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다”라고 비꼬았다.
두 박사는 “유주택자 규제는 위험한 선택”이라며 “궤도 이탈의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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