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서 그랬겠지” “남은 공무원 생활 편하게” 박원순 성추행 의혹 덮은 방조자들

“예뻐서 그랬겠지” “남은 공무원 생활 편하게” 박원순 성추행 의혹 덮은 방조자들

기사승인 2020-07-22 13:04:49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피해자 지원 단체는 22일 오전 11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피해자가 서울시청 상급자 20명에게 호소했으나 묵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에서는 관련 조사를 서울시가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피해자 지원 단체는 22일 오전 11시 서울 모처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고 박 전 시장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적 접촉과 언어적·성적 괴롭힘을 지속했다. 피해자는 상급자에게 고충을 호소하며 인사이동을 요청했다”며 “이 사건은 명백한 업무상 위력 추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고 박 전 시장의 비서로 재직할 당시 17명의 상급자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부서 이동 후에도 3명의 상급자에게 피해를 토로했다. 피해자가 고 박 전 시장으로부터 받은 ‘불편한’ 내용의 텔레그램 메시지와 속옷 사진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중에는 서울시청 인사담당자로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인사이동은 시장에게 직접 허락받아라” “예뻐서 그랬겠지”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이다”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해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달라” 등의 말을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이로 인해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추행 피해에 노출됐다”며 “추행 방조 혐의 또한 (법정에서) 인정될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고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며 성추행 관련 처벌이 어려워졌지만 방조자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증거 추가 공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모두 제출했다. 자료가 추가 확보되더라도 수사 기관에 제출될 것”이라며 “피해자가 구체적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책임전가이자 2차 피해”라고 못 박았다.

22일 오전 11시에 진행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 박태현 기자 

성추행 의혹과 관련 국가기관의 조사도 촉구됐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여성단체의 추천에 따른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 구성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단체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는 책임의 주체이지 조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서울시가 조사단을 구성할 경우, 조사 대상이 되는 서울시 공무원이 명백하게 사실을 말하기 어렵다. 외부인으로 조사단을 구성하더라도 서울시가 직접 주관·관리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이 소장은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긴급조치와 직권조사, 진정조사를 시행하는 게 맞다”며 고 박 전 시장 관련 사안과 성희롱·성차별적인 업무환경, 피해 묵살 과정 및 업무상 불이익 등에 대해 서울시 전·현직 관련자를 모두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피해자 지원 단체는 22일 오전 11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박태현 기자 

고 박 전 시장의 고소 사실이 검찰을 통해 유출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피해자와 김 변호사가 검찰에 먼저 접촉, 고소를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변호사는 “지난 7일 고소장 작성이 완료된 상태에서 피해자와 상의해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에 면담 요청을 했다”며 “검찰에서는 고소장 접수 전 면담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소인이 누구인지 확인을 먼저 해야 한다고 해서 피고소인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지난 8일 오후 3시 검찰 측과 면담이 약속됐으나 검찰 측 일정으로 인해 면담이 취소됐다. 이로 인해 고소장은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접수됐다.

앞서 고 박 전 시장 측이 피소 사실을 알게 된 경위를 두고 논란이 됐다. 경찰과 청와대, 여성단체 등에서 피소 사실이 흘러나온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 모두 피소 사실 유출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피해자의 입장문도 대독됐다. 피해자는 “문제 인식까지 오래 걸렸고 제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피해자로서 보호되고 싶고 수사 과정에서 법정에서 말하고 싶었다”며 “어떠한 편견도 없이 밝혀질 진실에 함께 집중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수치스러워 숨기고 싶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아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낯설다”며 “그럼에도 오랜 시간 고민하고 선택한 나의 길을 응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지난 8일 고 박 전 시장으로부터 4년간 서울시청에서 근무하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고 박 전 시장은 고소 이튿날인 지난 9일 실종됐다. 이후 지난 10일 오전 0시 서울 성북구 북악산 성곽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 박 전 시장 관련 제기된 고소는 총 4건이다. 피해자가 고소한 위력에 의한 추행과 온라인 등에서의 ‘2차 가해’, 제3자가 고소한 강제추행 방조와 피소 사실 유출 관련 공무상 비밀누설 등이다.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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