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여혐 논란의 후폭풍… ‘퇴출 vs 표현의 자유’

기안84 여혐 논란의 후폭풍… ‘퇴출 vs 표현의 자유’

기사승인 2020-08-22 05:26:01
▲ 사진=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웹툰 작가 기안84를 향한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그의 작품을 포털사이트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논란은 기안84가 2~3개월의 휴식기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불거졌다. 기안84는 지난 4일 네이버 웹툰에서 다시 연재를 시작한 ‘복학왕’의 ‘광어인간’ 1편, 2편에서 무능한 여성 인턴 봉지은이 남성 팀장과 성관계한 뒤 정식 인턴으로 채용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을 그려 도마 위에 올랐다. 회식 자리에서 봉지은이 조개를 깨뜨리는 장면이 등장했고, 그를 최종합격 시킨 팀장과 사귀는 내용으로 이어져 독자들은 이를 접대로서의 성관계를 뜻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논란이 이어지자 기안84는 지난 13일 ‘광어인간’ 2편 말미에 사과문을 덧붙였다. 기안84는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후 봉지은이 조개를 깨는 장면이 대게를 깨는 것으로, 팀장과 우기명의 대화에 나오는 “잤어요?”라는 질문은 “같이 있었어요?”로 바뀌었다.

작가의 사과에도 논란은 멈추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복학왕’ 연재 중단을 촉구하는 글이 게시됐다. 지난 12일 올라온 '***연재 중지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주인공 여자가 본인보다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대기업 팀장과 성관계를 해 대기업에 입사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희화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작가는 이름도 꽤나 알려진 작가이고, 네이버웹툰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인기 있는 작가”라며 “인기가 있는 만큼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볼 것 이라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해당 글은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기안84의 작품을 그대로 실은 네이버 웹툰에 대한 항의도 이어졌다. 지난 19일에는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8개 단체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웹툰 본사 앞에서 "네이버 웹툰은 혐오 장사를 중단하라"를 구호를 외치며 기안84의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기안84의 하차를 요구했지만 “주의하겠다”는 답변 외에 개선책을 내놓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어린 나이대의 독자들이 이 같은 혐오를 학습, 재생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네이버 웹툰의 입장에 반발하며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를 조롱할 권리는 주는 자유가 아니며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SNS에선 일부 동료 만화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들며 기안84의 퇴출에 반발했다. 만화가 강도하는 “작가와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 한 명의 작가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특정한 감성으로 판단 후 금지시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건 불편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서로가 지켜야 할 상위가치”라고 적었다. 또 만화가 원수연은 “작가들이 같은 작가의 작품을 검열하고 연재중단 시위를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만화계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현재 여성단체들과 결을 같이하고 있는 이들의 연재중단 운동은 50년이 넘도록 심의에 시달려 온 선배님들과 동료작가들이 범죄자로 몰리면서까지 투쟁해서 쟁취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사안을 바라보는 대중의 의견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기안84가 출연 중인 MBC ‘나 혼자 산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글과 하차를 반대하는 글이 번갈아 올라오고 있다. 기안84의 하차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은 “논란이 계속되는 출연자를 왜 붙잡고 있냐”, “혐오를 재생산하는 출연자를 방송에서 보고 싶지 않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하차를 반대하는 시청자들은 “일부 페미니즘 단체에 휘둘려선 안 된다”, “보기 싫으면 채널을 돌려라” 등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 청와대 국민청원 캡쳐

일부 독자들은 네이버 웹툰의 잘못을 지적했다. 직장인 한모(29)씨는 “웹툰의 주 소비층이 어린 세대인 만큼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며 “네이버도 강력하게 작가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계 종사자 강모(32)씨는 “문제가 된 장면을 내보낸 네이버 웹툰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가와 네이버 웹툰의 공식적인 사과가 나와야 한다”며 말했다.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었다. 대학생 김모(23)씨는 “어떤 표현을 해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며 “일부의 말을 듣고 퇴출시키면, 다른 예술인들도 기준에 어긋나지 않으려 표현을 억제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또 프리랜서 권모(32)씨는 “문제가 있는 창작물을 퇴출시키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만드는 운동이나 시각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웹툰 측은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1일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웹툰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큰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용자들의 의견을 잘 청취하고 작가들과 소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웹툰 서비스 담당자들도 변화하는 다양한 시각과 관련된 교육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사회적 정서가 변함에 따라 세부적인 가이드라인도 강화할 계획이다. 작가와 소통하고 사내 청소년보호 담당 부서와 논의해가며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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