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주인은 살지 못 합니다” 포퓰리즘에 멍드는 쪽방촌 재개발

“땅주인은 살지 못 합니다” 포퓰리즘에 멍드는 쪽방촌 재개발

기사승인 2020-10-08 06:00:20

[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로 땅주인들은 정부에 세금만 내고 내 땅에서 살 수 없게 됐어요. 아버지 때부터 수십 년간 가지고 있던 조그마한 땅인데... 왜 땅주인들은 내 땅이 개발되는 곳에 살 수 없는 거죠. 포퓰리즘에 빠져 쪽방 주민만 생각하는 게 ‘착한 재개발’입니까”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한 토지주는 쪽방촌 재개발에 대해 이같은 울분을 토해냈다.

노후 주거지였던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 일대를 주거·상업·복지타운으로 재개발하는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계획하고 영등포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토지공사(SH)가 시행사로 나서 지난 7월 17일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마쳤으며, 현재 토지보상을 위한 사전조사 단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쪽방촌 정비사업을 두고 토지주들의 반발은 날로 커지고 있다. 반발의 핵심은 토지주와 쪽방 주민을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다. 토지주들은 쪽방 주민들의 주거를 보장한 것처럼 토지주에게도 살 수 있는 집이나 땅을 내어달라고 호소한다.


착한 재개발 테이프 끊은 김현미·박원순


영등포 쪽방촌 재개발은 360여명이 거주하는 영등포 쪽방촌 약 1만㎡를 개발해 쪽방 주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370호와 신혼부부 등을 위한 행복주택 220호, 분양주택 600호를 오는 2023년까지 공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재개발에 따라 원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모는 정비사업의 폐단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소위 ‘착한 재개발’로 불렸다. 쪽방 주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물론 재개발 기간 동안 지구 한편에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쪽방 주민들이 임시로 거주할 수 있는 ‘선(先)이주단지’를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새로 들어설 복합시설에는 쪽방촌 주민들의 자활·취업 등을 지원하는 종합복지센터, 무료급식·진료 등을 제공하는 돌봄 시설도 들어선다.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명분에 따라 정부도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올해 1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등포역 대회의실에서 직접 사업 발표에 나설 정도였다.

김현미 장관은 당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공공임대주택으로 모시고, 행복주택을 넣어서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함께 거주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토지주는 떠나야 하는 착한 재개발


착한 재개발이라는 홍보와 달리 토지주들의 반발은 올해 1월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사업 목표가 쪽방 주민들에 대한 주거 지원에 쏠리면서 토지주에 대한 보상 문제는 계획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지주들이 자체 조사한 결과 개인 토지주의 90%에게 적용될 토지보상 방안이 ‘현금청산’밖에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발이 커졌다.

일단 토지주들은 쪽방촌에 실제 거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새로 들어설 공동주택에 입주가 불가능하다. 현행법상 재개발에 따른 이주자 주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람 공고일부터 계약일까지 실제 거주해야만 한다. 하지만 쪽방촌 토지주 가운데 실제 거주자는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 

한 토지주는 이에 대해 “밤이 되면 아이들이 지나가도 성매매 여성들이 쉬다가라고 말해요.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어요.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면 성매매 포주들이 누가 신고했는지까지 다 알고 항의하러 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애를 키우고 살 수 있습니까”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기에 시행사들은 토지수용에 대한 대가를 현금 대신 땅으로 주는 대토보상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3기 신도시 등에서 대토보상을 적극 권장했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대토보상 불가를 선언했다. 사업설명회에 참석한 LH 실무 담당자는 ‘땅이 좁아 토지주들에게 일일이 땅을 나눠 줄 수 없다’며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 


공익 위해 사익 제한 불가피하다

영등포 쪽방촌 모습 /사진=조계원 기자

결국 대다수 토지주들은 토지 강제수용에 따라 땅을 현금청산하고 더불어 양도세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시행사들은 이에 대해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토지보상법이나 국토부 지침 등이 공익을 위해 일부 사익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시행사는 법이나 지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SH 관계자는 “공익사업의 폐해가 있지만 토지주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라며 이해를 당부했다.

토지주들은 끝까지 ‘내 땅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토지주 조합을 결성해 ‘대토리츠’ 도입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땅이 좁아 대토보상 불가를 선언한 시행사가 대토리츠 허용에 나설 지는 미지수다. 시행사들은 이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았다.

한 토지주는 “쪽방 주민에게 살 집을 제공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재개발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쪽방 주민에게 집을 제공하듯 재개발의 이익이 토지주에게도 공평하게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chokw@kukinews.com
조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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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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