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약물을 이용한 임신 중단이 합법화된다.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 ‘미프진’을 둘러싼 의·약계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는 지난 7일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중단 허용 범위와 방법을 확대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는 별다른 절차 없이 임신 중단을 결정할 수 있고, 임신 15주∼24주 이내에는 ▲성범죄로 인한 임신 ▲친·인척간 임신 ▲임신이 임부의 건강을 위협할 경우 등 특정 사유가 인정되면 임신 중단을 허용한다. 임신 중단 방법으로는 기존에 시행되던 시술 외에 미프진 등 자연유산 유도 약물이 추가됐다.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
미프진은 프랑스의 제약사 루쎌위클라프에서 개발했다. 임신 중단을 목적으로 경구투여하는 알약으로, 임신 초기에 해당하는 10주까지 사용할 수 있다. 미프진의 주성분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초기 자궁 내막의 발달을 돕는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트테론을 차단해 수정체가 자궁에 머물지 못하도록 작용한다.
미프진 한 알로 임신 중단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프진과 함께 미소프로스톨 제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이는 자궁 수축이나 자궁경부 이완 작용을 유발하는 성분이다. 약을 복용한 임부는 1~2주일 후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유산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약 3시간가량 생리통 이상의 복부 통증, 하혈 등이다.
제품명 미프진으로 알려진 자연유산 유도 약물은 그동안 국내에서 유통과 처방 모두 불법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는 미프진을 해외에서 불법적으로 구매해 복용하는 방법이 공유됐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와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미프진을 판매하는 홍보글이 공공연하게 게시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낙태 경험자 가운데 9.8%(74명)는 미프진 등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해외의 상황은 다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5년부터 미페프리스톤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을 비롯한 70여개 국가에서 미프진의 유통과 처방을 합법화했다.
의약분업 비껴갈까?
미프진 합법화를 앞둔 각계의 우려와 견해 차이가 크다. 의사 단체와 약사 단체들은 미프진이 임부의 건강에 끼칠 수 있는 악영향을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다만,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정반대의 의견을 표하고 있다.
의사들은 미프진의 처방과 투약을 모두 병원에서 실시하는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등은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미프진 도입 여부는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뒤에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약물을 산부인과 전문의가 산부인과 병·의원에서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역시 미프진의 투약 결정부터 유산의 완료까지 전 과정을 산부인과 의사가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신 주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물론, 임부의 안전을 보장하고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미프진을 의약분업 예외 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협은 이 같은 의견을 지난 21일 국회에 직접 전달했다.
약계에서도 임부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크다. 다만, 의약분업을 준수해야 안전한 투약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대한약사회 여약사회 관계자는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이중으로 약물 처방을 검토해 안전성을 제고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성을 위해 약물에 대한 전문가를 배제한다’는 주장이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약사의 복약지도가 없다면 약화사고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됐다. 여약사회 관계자는 “한진균제, 항생제, 자몽주스 등 미프진과 함께 복용하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물과 식품이 적지 않다”며 “자궁 내 장착하는 피임기구 ‘루프’를 시술한 사람은 미프진을 복용하면 건강에 치명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부가 평소에 복용한 의약품을 세세히 상담하고, 복용 시 주의사항을 숙지시키는 절차가 필수적이다”라고 피력했다.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