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최하나 감독 “두 아빠와 아주 불편한 동행, 재밌을 것 같았어요”

[쿠키인터뷰] 최하나 감독 “두 아빠와 아주 불편한 동행, 재밌을 것 같았어요”

기사승인 2020-11-12 06:47:01
▲ 사진=리틀빅픽처스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두 명의 아빠가 있다. 전남편과 현남편을 동시에 마주한 엄마도 난감하지만, 딸을 사이에 둔 두 아빠의 기 싸움도 만만치 않다.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임신한 딸은 가족들을 이끌고 실종된 고등학생 예비남편을 찾아 나선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 역시 순탄치 않다.

‘애비규환’은 최하나 감독이 떠올린 ‘두 명의 아빠가 도망간 예비사위를 잡으러 간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영화다. 영화과를 졸업하기 위해 장편 시나리오를 써야 했던 최 감독은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담당 교수의 말을 깊게 새겼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최 감독은 “나를 닮은 내가 믿는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멀리 있는 거창한 소재 대신, 내 가족들과 친구 가족들 사연을 참고해서 쓰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족영화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면서 닮고 싶은 영화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코미디 색깔의 가족영화더라고요. 1년 동안 장편 시나리오를 쓰는데 처음이라 막막했어요. 그러다가 ‘두 명의 아빠가 도망간 예비사위를 잡으러 간다’는 아이디어가 불쑥 떠올랐고, 제가 아는 재혼가정과 이혼가정 사연들을 참조해서 썼어요. 또 제가 토일이(정수정)처럼 일곱 살 때까지 대구 칠곡에 살다가 경기도로 올라왔거든요. 대구에 답사를 가서 모노레일을 타고 다니면서 이런 장소들이 나오면 좋겠다는 식으로 하나씩 만들어갔죠.”

▲ 영화 '애비규환' 스틸컷

시나리오를 완성하자마자 영화화에 들어가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애비규환’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제출한 장편 독립영화 지원사업 공모전에 당선되며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함께 단편 영화를 작업한 촬영감독에게 연락했고, 제작사와 연이 닿아 시나리오를 발전시켰다. 최 감독은 ‘애비규환’을 통해 가족들의 불편한 동행을 구현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두 아빠와 엄마와 딸이 같이 합심해서 아주 불편한 동행을 하는 느낌이 코미디 영화로 좋았어요. 두 아빠는 서로 불편하고 경쟁상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들이 딸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합심하는 과정 자체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딸의 입장에선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이혼 과정이나 부모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요. 자신의 가족이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정상 가족’에 대한 선망으로 모든 일이 시작됐지만, 그의 가족이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인 바람이었어요.”

토일의 가족사도 독특하고 흥미롭지만, 예비남편으로 등장하는 호훈(신재휘)의 가족도 만만치 않다. 어딘가 붕 뜬 느낌의 호훈 가족은 평범하지 않은 게 분명한 동시에 이상한 현실감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최 감독은 토일이 호훈의 가족을 ‘정상 가족’이라 여기는 것 역시 ‘애비규환’의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리틀빅픽처스

“호훈의 가족은 토일이에게 착각을 심어주는 장치예요. 토일이가 호훈의 집에 가서 자신의 가족과 다르게 여기가 정상 가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혼과 재혼을 겪지도 않았고 친부모와 친아들 관계잖아요. 그 지점에서 친아빠를 찾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죠. 호훈의 가족을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으로 설정했어요. 말투나 복장,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이상하지만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한국 중년 남녀의 모습과 동떨어진 복장으로 토일이를 며느리라고 해서 하대하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르며 예의를 갖추면서 환대해주죠. 호훈 가족을 보면 어딘가 일관성이 없어요. 호훈 아빠가 해오는 음식은 빠에야고 인테리어는 마티스의 꽃그림과 형형색색의 커튼, 거기에 레게음악이 나와요. 이 사람들의 탈한국적 면모를 보여주며 토일이의 미래 결혼 생활을 보여주고 안심시키고 싶었어요.”

‘애비규환’은 임신과 재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던 이야기는 결국 가족으로 흐른다. 여러 가족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정상 가족’은 무엇인지, 정말 존재하는 건지 질문한다. 최 감독은 토일이 같은 사연을 가진 관객들이 가족으로 인해 불행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도 있겠지만, 대부분 가족은 각자의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혼이나 재혼처럼 보편적인 규범에서 벗어난 형태의 가족이어도 그걸 불행한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더 나은 삶의 선택일 수 있잖아요. 영화에서 토일이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 같은 반 친구들이 ‘걔네 집 이혼했대’라며 수군거려요. 그게 제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 실화거든요. 친구들이 마치 다른 세상 얘기인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 그중 누군가의 얘기일 수도 있잖아요. 토일이라면 그 상황을 비웃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만약 토일이 같은 사연을 가진 관객들이 있다면, 그런 말들에 상처받는 게 아니라 비웃어주는 태도에 공감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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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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