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과 부패의 경제학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과 부패의 경제학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기사승인 2020-12-09 20:58:27
▲정동운 전 대전과기대 교수
매년 설이나 추석 연휴 때면 TV의 특선영화로 약방의 감초같이 등장했던 영화 중 하나가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였다. 이 영화는 1971년 12월 25일 아침 서울 충무로 소재 대연각 호텔에서 프로판가스 폭발로 불이 일어나 22층이 전소됨으로써, 163명이 사망한 대형 화재사건이 그 소재가 되었다.

<타이타닉(Titanic, 1997)>을 보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이 영화가 큰 충격이 되지 못하겠지만, 필자에게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초특급 대작으로 각인되어 있다. 135층의 초고층 건물을 휘감는 엄청난 불길과 진압대의 숨 가쁜 사투는 165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며, 특수효과나 세트촬영 역시 지금 봐도 손색이 없다. 당시 1천4백만 달러를 투입한 이 작품은, 3년 후 등장한 <스타워즈(Star Wars)>의 제작비가 1천1백만 달러라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당시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셈이다. 흥행 수익이 1억1천만 달러가 넘은 성공작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초고층건물의 공사비를 착복하려는 한 사람의 사욕, 즉 부패가 대형화재를 불러와 수많은 인명 손실을 내고 건물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마치 성경의 바벨탑이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가는 고층빌딩과 같이, 타워라는 공간은 어리석은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상징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고층건물에 화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설정함으로써, 부패에 의한 물질주의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준다.

부패(corruption)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함께 파멸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부패는, 비리․부정․불법 등의 용어와 혼용되기도 하지만, 이들과는 차이가 있다. 비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 행위’에 초점에 맞춘 것이고, 부정은 ‘옳지 못한 의사결정이나 타당치 않는 행위’를 의미하며, 불법은 ‘옳지 못한 위법행위’를 지칭한다. 그러나 부패란 용어는 이들 용어보다는 일반적으로 더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즉, 모든 사람들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이나 권위를 오용 및 남용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19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59점, 180개국 중 39위를 차지하였다. 이 부패인식지수는 공공부문의 부패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을 반영하여 이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는데, 70점대를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로, 50점대는 ‘절대부패로부터 벗어난 정도’로 해석된다.

한국의 경우, 정부의 부패 억제 기능이 2018년 53점에서 60.8점으로, 뇌물 등 기업활동과 관련한 일선 부패 관행이 50점에서 55점으로 올라 많이 개선된 것으로 평가됐다. 또한, 정치시스템 내부 부패지수도 50점에서 54.2점으로 상승했다. 다만 OECD 평균과 비교해 전반적인 부패수준이 17.67점, 정치시스템 내부의 부패가 13.91점, 공공자원의 관리/계약 등에서의 뇌물 관행이 12.62점 낮았다.

한비자에 의하면, 부정을 행하는 공무원을 8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즉, ①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몰래 특혜를 주는 부기(不棄), ② 공공의 재물을 나누어주는 인인(仁人), ③ 공직을 업신여기고 제 몸을 소중히 여기는 군자(君子), ④ 법을 어기며 가까운 사람을 감싸는 유행(有行), ⑤ 공보다 사를 중히 여기는 유협(有俠), ⑥ 나라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고오(高傲), ⑦ 남과 다투고 윗사람의 지시를 거역하는 강재(剛材), ⑧ 나랏돈으로 선심을 쓰며 인기를 끄는 공무원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은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러한 유형은 변함없는 것 같다.

부패는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에, 부정부패 추방 없이 사회통합과 사회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부패해도 국민이 부패하지 않았다면 희망이 있고, 국민이 부패해도 정부가 부패하지 않았다면 절망은 없으나, 정부도 국민도 모두 부패했다면 절망밖에 없다.” 이는 피히테(‘獨逸민족에게 告함’)의 말이다. 정직한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나마 그들이 가진 자유마저 잃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부패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질병이 분명하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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