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헌혈 인원이 감소하면서 국내 혈액수급 불균형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 중‧장년층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일환으로 ‘헌혈 기념품’이라는 이름의 인센티브 제공이 언급되고 있지만 ‘대가성 헌혈’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15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1차 혈액관리 기본계획(안) 대국민 의견수렴’ 공청회에서는 “자발적 헌혈과 대가성 헌혈의 기준을 정의해 달라”는 요청이 다수 제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대가성 헌혈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 현행 헌혈 기념품은 10~20대 타깃, 중장년층 위한 보상 없어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헌혈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20대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 반면 50대 이상 수혈건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2019 혈액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제 헌혈자 수는 전년 대비 4만4244명이 감소했고 10대 헌혈자 수도 크게 줄었다. 이에 혈액보유량도 적정(5일분 이상) 수준은 2017년 42.2%에서 2019년 13.7%로 감소했고, 관심(3~5일분)일수는 같은 기간 57.8%에서 84.9%로 증가했다. 특히 작년에는 혈액보유량이 3일분 미만인 ‘주의’ 수준도 발생해 혈액수급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헌혈 참여자가 청소년과 군인, 10대와 20대에 집중돼 있고, 전체 헌혈인구의 약 43%가 학생들의 단체헌혈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대별 국민헌혈률을 보면, 10~20대가 전체의 65.2%를 차지하고 있으며, 30~40대는 28.2%, 50~60대는 6.6%에 불과하다. 그러나 프랑스는 2018년 기준 10~20대 26.8%, 30~40대가 38.4%, 50~60대가 36.8%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혈액 확보 방안으로는 크게 ‘헌혈 증진’과 ‘적정 수혈’이 있는데, 헌혈 후 다과나 문화상품권, 영화표 등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하는 것도 헌혈 장려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념품들이 10~20대에 맞춰져 있어 중장년층의 관심을 끌어올리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헌혈 제고를 위해 기념품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대가성 헌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헌혈기부권 선택 늘어…홍보‧교육 중요
이날 공청회에서도 헌혈 인센티브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국민들은 암검진 등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상품권 등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서도 매혈(賣血)과의 차이를 구분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이날 패널토론자로 참석한 조남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은 헌혈 제고에 있어 헌혈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 건강검진이나 기념품 제공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조 본부장은 “지난 2011년부터 중장년층이나 여성 헌혈자 비율을 늘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에 비해 크진 않지만 효과가 있었다. 개인 및 단체 헌혈 참여가 늘었다는 얘기”라면서도 “무엇보다도 헌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홍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는 단체 헌혈이 줄기 때문에 개인의 참여를 늘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홍보가 더 필요하다”며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기존에 선호하던 영화표 등의 수령이 줄고 기부권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혈액기부권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즉각적으로 알려준다면 헌혈자들도 좋은 목적으로 기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헌혈자의 혈액으로 건강검진을 진행하는 방식은 혈액원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조 본부장은 “특히 암질환의 경우 위양성이 나오거나 위음성이 나오면 혈액원 신뢰도에 문제를 줄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필요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10~20대만 헌혈하는 걸 깨려면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인센티브 지급에 대해 논의는 할 수 있겠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접근할 순 없다”며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지속적으로 한 교육효과는 10년, 20년 후 나오기 때문에 예비헌혈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헌혈 시간 및 장소 접근성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직장인은 퇴근 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 근처로 가서 헌혈을 해야 하는데 현재 그런 장소가 없다. 주말에도 문을 열지 않는 헌혈의 집이 많다”면서 “헌혈자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여유가 되는 시간에 헌혈을 하고 교육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만명 혈액 필요…선의의 기부행위는 비현실적
황유성 한마음혈액원장은 헌혈 인프라를 늘려야 하는 데에 동의를 하지만 중장년층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헌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일정 부분의 기념품 제공은 필요하다고 전했다.
황 원장은 “한때는 학생과 군인 헌혈이 전체 70%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에 헌혈 인프라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몰려있다. 중장년층의 헌혈을 늘리려면 그들이 많이 있는 곳에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면서 “헌혈동기나 장소 등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 중장년층은 직장인, 주부가 많기 때문에 사업장이나 거주지 인근에 적어도 현재 인프라의 1/3정도를 배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념품 등 중장년층이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한다. 헌혈 후 마스크 제공, 지역화폐 지급 등은 논란이 되긴 했지만 효과는 있었다”며 “이런 이벤트는 헌혈 생각을 안 하고 있던 사람들이 헌혈자로 진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제한적 범위 내에서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아무런 대가 없는 무상헌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엄태현 인제대 의과대학 교수는 “헌혈은 정말 중요한 기부행위다. 문제는 기부행위를 하는 사람이 연간 200만명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자신을 온전히 내놓고 순수한 마음으로 교통비를 써가며 기부하는 사람이 10명, 20명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200만명을 찾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헌혈은 축제라고 봐야 한다. 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축제를 하긴 어렵기 때문에 여러 비용을 써야 한다”면서 “안정적인 혈액수급은 헌혈자가 수혈자보다 많아서 필요한 만큼만 혈액을 받는 것이지 지금처럼 헌혈자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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