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빠진 인간이 찾아 헤매는 ‘스위트홈’ [넷플릭스 도장깨기㉓]

절망에 빠진 인간이 찾아 헤매는 ‘스위트홈’ [넷플릭스 도장깨기㉓]

기사승인 2020-12-22 07:20:01
▲사진=넷플릭스 '스위트홈' 포스터
(* 드라마의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낡은 아파트에 갑자기 등장한 괴물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연대하는 주민들의 이야기. ‘스위트홈’을 보기 전 예측할 수 있고, 본 이후에도 틀리지 않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설명이다. 장르물의 관습을 따라간다면 인간이 ‘어떻게’ 괴물과 맞서 싸우는지,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10회 분량을 채울 수 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잘 준비해서 괴물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서사, 인물들마다 괴물과 맞서야할 나름대로의 강한 동기를 갖고 있는 서사는 대중이 늘 좋아했고 앞으로도 좋아할 이야기다.

‘스위트홈’은 눈앞에 놓인 이 길을 걷지 않는다. 대신 인간과 괴물의 이분법을 벗어난 이야기, 인물의 과거보다 현재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 결과 괴물의 등장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내는지에 관한 독특하고 과감한 드라마가 나왔다. 괴물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이미 수도 없이 많아서 비슷한 이야기에 질려버린 국가에서 신선하고 과감한 시도를 한 결과물이라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스위트홈’은 사회적 죽음을 당한 현수(송강)가 현실적 죽음을 선택하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죽음을 유예하고 이미 죽어있는 삶을 이어가던 현수는 새로 이사 간 아파트 그린홈에서 갑자기 주민들이 코피를 쏟고 괴물로 변하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 셔터를 내려 외부와 차단된 그린홈 1층은 주민들의 아지트가 되어 괴물과 맞서 싸울 준비를 시작한다. 세상의 멸망을 느끼고 미뤘던 죽음을 맞으려던 현수는 위험에 빠진 다른 층 아이들을 목격하고 ‘살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사진=넷플릭스 '스위트홈' 스틸컷
‘스위트홈’이 다루는 건 인간과 괴물의 대결구도가 아니다. 원작의 괴물들을 실사로 공들여 구현했지만, 각자 이름과 스토리 등 괴물의 서사는 대부분 사라졌다. 괴물과 인간의 전투 장면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협적인 괴물과 싸워서 이기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괴물과 같은 건물에 사는 게 별로 무섭지 않은가 의심될 정도로 괴물은 설정으로 존재한다. 대신 드라마의 포커스가 향하는 건 인간이다. 드라마의 중반부까지 인물들의 사연과 캐릭터가 소개되고 1층에서 뭉쳐서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기존 드라마였으면 하나의 시즌을 가득 채우기 충분한 긴 이야기를 압축해 전달한다.

중반부를 넘어가며 ‘스위트홈’은 세계관 확장을 시작한다. 인간과 비인간(괴물)의 대칭 구조에서 그린홈 내부의 주민들(인간)과 야생이 된 외부 세상(괴물), 그리고 현수(인간+괴물)의 삼각 세계관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멸망한 세상에 적응한 괴물과 괴물 같은 인간들에 맞서는 그린홈 주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 안에서 현수는 인간의 인간성과 괴물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늑대인간 같은 존재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에 빠진다. 드라마는 전염을 통해 괴물이 된 인간들과 그렇지 않는 현수의 차이점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현수가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처럼 그대로 놔둔다.

드라마에선 고작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이 완전히 바뀐 만큼 꽤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간들은 빠르게 친해지고 갈라서고 사랑한다. 현수는 새 생명을 얻었다. 현수는 이것이 새 생명인 줄도, 왜 자신에게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현수가 적응하는 과정은 느리고 투박하고 어설프다.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각인된 현수의 정체성 변화는 주인공을 의심하게 되는 독특한 체험을 안겨준다. 시청자들에겐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이자 시험대이기도 하다. 당신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주인공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당신은 인간적이고 나약한 주민들과 괴물처럼 강해진 주인공 중 어느 쪽을 응원할 것인가. 당신은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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