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까말] 내 나이가 어때서

[솔까말] 내 나이가 어때서

기사승인 2021-01-01 07:00:15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새해가 되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습니다. 나이가 저를 한계 짓지 않게 하겠다고 늘 다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엄마는 지금 제 나이였을 때 저를 낳으셨다는데, 저는 저 한 사람의 생활을 건사하는 것조차 벅차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요. 경력은 느는데 실력은 멈춘 것 같고, 화는 자주 나는데 다정함을 베푸는 건 점점 어려워져요. 친구들이 결혼하고 고양이들마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내 곁엔 누가 남아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내가 기대했던, 사회가 원했던 어른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제 나이가 갚지 않은 빚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2020년의 끝자락에도 포털 사이트에는 어김없이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서정희, 59세 맞아?…민낯 자신감’ ‘50세 앞둔 고현정의 세월 거스른 미모’ ‘“나이를 안 먹네”…한예슬, 40세 믿기지 않는 동안 미모’…. 어려보이는 외모나 날씬한 몸매는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며 찬사를 받곤 합니다. 평가항목도 세세해요. 피부는 주름 없이 탱탱해야 하고, 표정엔 생기가 넘쳐야 하며, 군살 없이 매끈한 실루엣이 요구되죠.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제 얼굴과 몸을 돌아보면서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순리인데, 나이 먹음의 흔적은 어째서 ‘열등한 것’으로 전제되는 걸까요.

“나이 들지 마세요. 나이가 드는 건 죄입니다.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되고, 라디오에선 절대 당신의 노래를 틀어주지 않을 겁니다.” 팝스타 마돈나는 2016년 빌보드 시상식에서 ‘올해의 여성 뮤지션상’을 받은 뒤 했던 10여분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1년 전 발표했던 노래가 영국 BBC의 라디오1 채널에서 재생되지 않은 사실을 꼬집은 겁니다. BBC 라디오 1은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취자에게 맞춰 음악을 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돈나의 음악이 젊은 청취자에게 소구할 수 없을 거라고 방송사는 판단한 것이죠. 사람들은 BBC의 정책이 연령차별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BBC는 이런 지적을 빠르게 부인했지만, 글쎄요, 어느 쪽의 주장을 타당하다고 여길지는 대중의 몫이겠지요.

세상은 나아졌을까요. 공교롭게도 ‘한국의 마돈나’라고 불리는 가수 엄정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가끔 내 나이를 기사를 보고 알아. ‘엄정화, 50대 맞아?’ 이렇게 나오잖아, (기사) 제목에. 그런데 나는 30대 중반부터 그걸 겪어 왔어. 나이 든 걸 창피해 해야 하나? 그럼 나이에 맞춰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이 생길 정도로.”(tvN ‘온앤오프’) 30대 땐 ‘나이 들면 발라드 가수로 전향해야 한다’는 편견과 싸워야 했고, 40대엔 ‘나이 들었으니 (가수 활동을) 그만하라’는 사람에게 맞서야 했습니다. 그는 “나이, 처한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음악도 무대 위에서 가장 멋있고,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50대 엄정화, 파격 노출로 복근 자랑’ ‘컴백 D-1 엄정화, 50대 나이 믿기지 않는 완벽 몸매’ 같은 제목으로 그를 설명합니다.

세월을 거스르는 것이 젊은 시절의 외양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일이라면, 저는 세월을 정통으로 맞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하지만 세월과 싸운다는 게, 낡은 관습과 오래된 편견, 고여 있는 사고를 거스르는 일을 뜻한다면 저는 세월에 기꺼이 맞설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더라도, 나이가 저를 한계 짓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나이에 맞춰서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면 답이 없어. 달라진 게 없는데. (중략) 그 사람들 생각에 맞췄다면 난 아마 없었을 것 같아”라는 엄정화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요. 그러니 당신도 활기찬 마음으로 2021년을 맞이할 수 있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wild37@kukinews.com / 사진=tvN ‘온앤오프’, 빌보드 유튜브 캡처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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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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