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는 왜 근절되지 못하는가 [RPS 논란 진단③]

‘딥페이크 성범죄’는 왜 근절되지 못하는가 [RPS 논란 진단③]

기사승인 2021-01-23 07:00:09
딥페이크 성범죄를 공론화를 위한 온라인 운동.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RPS(Real Person Slash·원전을 재해석한 픽션 가운데 실제 인물을 로맨스 관계로 풀어낸 창작물)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으로 온라인이 뜨겁던 지난 11일, 여성 연예인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언론에 알려졌다. 피해자는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 A씨. 소속사에 따르면 A씨는 2년 전 해외에서 열린 연예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불법 촬영 피해를 겪었다. 해당 사진은 불법적으로 조작돼 온라인상에 유포되기까지 했다. 소속사는 촬영자와 유포자를 적발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죄와 인격권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RPS가 연예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딥페이크’(인공지능 이미지 합성)를 활용한 성범죄부터 처벌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 연예인들을 고통 받게 하는 불법 영상 ‘딥페이크’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대표적이다. 청원자는 “딥페이크는 엄연한 성폭력이다. 여성 연예인들의 영상은 각종 SNS에 유포돼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성희롱, 능욕 등 악성 댓글로 고통받고 있다”며 “딥페이크 사이트와 이용자들의 강력한 처벌과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게시 하루 만에 3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2017년 미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이용자가 활용 기술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확산한 딥페이크 기술은 타인의 얼굴 등을 불법촬영물 등 성 착취 영상에 합성해 유포하는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여성 연예인을 표적으로 한 경우가 많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사이버 보안 회사 ‘딥트레이스’가 2019년 펴낸 보고서(The State Of Deepfakes-Landscape, Threats, and Impact)에 따르면 온라인에 유통된 딥페이크 동영상 가운데 96%가 성적인 영상이다. 2018년 12월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이런 영상엔 오직 여성만 등장하며 그 중 25%에 달하는 영상에 K팝 가수들이 등장한다.

딥트레이스가 지난 2019년 펴낸 보고서. 이에 따르면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 사이트에 올라오는 동영상엔 여성만 등장하고, 이 중 25%가 K팝 가수다.
가요 기획사들은 자체 감시와 팬들의 제보를 통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적발하고 있으나,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기획사 관계자 A씨는 “2~3년 전부터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무팀이 주시하며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딥페이크를 제작·유포·판매하는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가 많아서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팬 분들의 제보도 꾸준히 확인하고 있으나, 수법이 워낙 지능적이라 주체를 찾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기획사 직원 B씨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해오고 있지만, 아직 처벌 강도나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법 합성이 아니더라도 연예인의 신체 일부를 강조한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돼 연예인이 성희롱에 시달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많은 기획사들이 악플과 성희롱 등에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범죄 성립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B씨는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 외에도 성희롱이나 악플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서 “이로 인해 아티스트가 받는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했다. 여성 아이돌 가수가 소속된 한 연예 기획사는 최근 “지속적이고 도가 지나치는 6명을 대상으로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며 해당 누리꾼의 아이디와 이용 커뮤니티를 공개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불법 포르노 사이트나 텔레그램 등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플랫폼에서 유통·판매돼 적극적인 대응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성 연예인의 경우,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고, 특히 딥페이크 성착취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불법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고를 겪는다”고 짚었다. 실제 2019년 일명 ‘정준영 카톡방’ 사건 당시, 피해자로 거론된 여성 연예인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정준영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기도 했다.

결국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근절을 위해선 다자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서 대표는 “소속사에선 법적 대응을 통해 연예인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가해자가 특정될 가능성이 낮거나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인지수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근본적인 해결 방식은 가해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문화인식 측면에서의 노력과 함께 실제적인 처벌의 위험부담이 있어야 가해 행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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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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