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서비스인 프라이빗 콜은 이용자에게 가수의 말투(낮춤말·높임말·아무거나)와 이용자를 향한 애칭, 그리고 통화 상황 등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통화 상황은 안부·응원·힐링·모닝콜·생일 등 다양하다. 애초 유니버스 측은 연애 직전 단계인 ‘썸’을 통화 상황에 포함했다가 이용자의 반발에 부딪혀 삭제했다. ‘팬들은 아이돌을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다.
아이돌 가수와 팬은 복잡한 유대로 연결돼있다. 아이돌 가수의 인간적인 매력은 그들의 음악적 재능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소한 말과 행동, 태도와 표정이 그 자신의 경쟁력에 영향을 줘서다. 한편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선망과 동경을 넘어 동료애를 느낀다. 자신과 아이돌이 함께 성장해간다고 믿는 것이다. ‘썸’ 서비스의 패착은 아이돌과 팬들 사이의 이 같은 유대감을 성애적 감정으로 오역한 데 있었다.
그러나 ‘썸’ 서비스 종료 이후에도 께름칙한 기분이 남는 건, 프라이빗 콜이 아이돌 가수와 팬들 간 정서적 친밀감을 상품화하며, 이 과정에서 아이돌 가수의 자유의사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콜에서 아이돌은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기보다 하나의 콘텐츠로서 소비자(팬)들에게 제공된다.
SM엔터테인먼트가 자회사 ‘디어유’를 통해 제공하는 ‘버블’는 전자의 사례에 해당한다. 버블은 아이돌 가수가 보내는 모바일 메시지를 유료로 구독하는 서비스로, 지난해 디어유의 흑자전환을 견인한 일등공신으로 꼽힐 만큼 이용자의 반응이 좋다. 무결한 서비스는 아니다. 아이돌 가수의 공적 활동과 사생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감정노동과 팬서비스의 경계도 흐릿해진다.
하지만 적어도 버블 서비스에서 아이돌 가수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반면 프라이빗 콜이 보여주는 아이돌은 철저하게 이용자의 입장에서 설계된 모델이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이용자가 원할 만한 대화를 들려주는 것이다. 당장은 시대착오적인 멘트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대화 내용이 적절한가에 관한 문제는 부차적이다. 다정하고 친절하며 순종적이고 무해한, 하지만 주체성이 삭제된 채 소비자의 입맛에 맞도록 설계되고 통제되는 이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의 상품화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고전적인 결함으로 꼽혀왔다. 내밀한 사생활은 콘텐츠가 돼 팔려나가고 팬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감정노동이 강요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AI가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 누군가는 실제 인물의 직접 노동보다 AI를 활용한 콘텐츠 공급이 더욱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정 위험한 것은 인간의 무엇이든 재화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인간이 인간을 소비할 수 있다는 믿음, 아이돌 가수가 되기로 한 이는 스스로 상품이 되기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믿음이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아이돌의 천진한 목소리가 뜻밖의 경종을 울린다.
wild37@kukinews.com / 사진=NC/클렙 제공, 버블 안내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