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내가 기록되고 있다...녹음의 '공포'

어디선가 내가 기록되고 있다...녹음의 '공포'

김명수 대법원장 ‘거짓 녹취' 계기 관심 증폭 ...무차별적 녹화·녹취에 대한 불안감도

기사승인 2021-02-15 06:10:02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연합뉴스

[쿠키뉴스] 최은희 기자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까 가끔 자동 녹음을 해놓는 경우가 있죠. 부당한 상황을 고발할 때 객관적인 증거로도 제시할 수 있고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을 때보다 든든하달까요”

녹화·녹취는 일상과 점점 밀접해지고 있다. 버튼 한 번이면 상황을 뒤집을 증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차별적 녹화·녹취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일상에서 수집하기 쉬운 증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녹화·녹취다.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대화 및 통화 내용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법적 분쟁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통화 녹음이나 녹취록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례도 많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해명’도 녹취록 공개로 밝혀졌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사유를 근거로 한 사표 반려 의혹을 부인했지만, 임성근 부장판사가 대화 녹취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녹화·녹취는 발화 정황·목소리 높낮이 등 대화 상황의 모든 청각 정보를 기록해 증거가치가 높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말바꾸기·공갈 등 사태를 대비해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서울 산천동 원효초등학교 제38회 졸업식이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진행된 13일 정한주 교장선생님이 졸업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일각에서는 비밀 녹화·녹취가 일상화되는 추세에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목소리가 그대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대면 회의 및 수업이 증가하면서, 녹화가 쉬운 환경에 자주 노출되는 이들의 우려가 크다. 대학교 교수인 김모씨(46)는 “녹화에 대한 걱정은 언제나 있다. 비대면 수업이나 화상회의 때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제하는 편”이라며 “순간적인 실수도 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 김모씨(32·여)도 “수업 도중 원치 않는 녹화 얼굴이 무단 녹화되는 경우가 염려되긴 한다”며 “누군가 동의 없이 녹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불쾌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녹취 가능성을 염두해 일상적인 행동과 말조차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유치원 교사인 강모씨(26·여)도 고충을 토로했다.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부 학부모에게도 녹취가 일상적 습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실제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숨겨 보내는 학부모들이 있다.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제대로 된 훈육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교사들이 아이에게 하는 말 하나하나를 스스로 검열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비밀 녹취가 어디까지 불법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대학생 김모씨(23)는 “남자친구가 성관계 도중 대화를 녹음한 게 발각됐다”면서 “이런 경우마저 당사자들 간 대화 녹취라는 이유로 용인될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서울중앙지법. 쿠키뉴스 DB
동의 없는 비밀 녹화·녹취 문제를 방지할 대책은 마련되어 있을까.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타인 간의 대화를 허락 없이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를 위반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타인’ 간의 대화를 ‘제3자’가 몰래 녹음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본인이 직접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인 경우 처벌이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 2014년에는 택시기사가 승객과 나눈 대화를 동의없이 인터넷에 생중계했으나 대법원이 이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hoeun2311@kukinews.com
최은희 기자
hoeun2311@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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