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봄이 나를 잔인하게 한다...깨어나라고 하니까"

[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봄이 나를 잔인하게 한다...깨어나라고 하니까"

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기사승인 2021-03-13 12:20:36
박한표 학장
며칠 전, 오랜만에 대전시청에 갔다. ‘우리마을대학’을 협동조합으로 만들기 위해 자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시청광장은 무슨 행사를 하는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매화나무는 아무 말 없이 꽃 전차를 하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다. 경찰은 봉쇄 바리케이트를 치고 '쓸데 없이' 분주했다. 

코로나-19가 1년 넘게 진행되면서, 세상은 크게 흔들리며 바뀌고 있다. 백영옥 소설가의 글을 보면, 왜 ‘우리마을대학’이 필요한지 잘 말해 준다.

"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과거의 말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100세 시대를 맞아 직업을 5~6가지 가지게 될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예견을 ‘책’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는 요즘이다. 디자이너, 유튜버, 작가, 사진가, 동기 부여 강사. 며칠 전, 건네받은 명함 속 다섯 직업은 ‘N잡러’라는 신조어를 몰라도 낯설지 않다." 

백영옥 소설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액체성’을 소개했다. 이 말은 이 시대의 흐름이다.

"액체성은 어디에도 담기고, 어떻게 든 흘러가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현재를 적확하게 정의했으니, 코로나가 촉발한 이런 변화 속도라면 우리는 ‘물만큼’ 유연해져야 생존할 것 같다. 최근 귀에 인이 박히게 들은 ‘뉴 노멀’도 결국 세상의 기준점이 바뀌었다는 뜻 아닌가."

이젠 정말 유연해야 산다. 

또 다른 글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 동 버는 일’을 읽었다. 글쓴이는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지영이라는 분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소위 '프리랜서'는 힘들다. 그래 나를 전체적으로 되돌아보았다. 다음 문장들이 눈에 들어 왔다. 

-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돈 버는 것과는 더욱이 다를 수밖에 없다.
- 좋아하는 일=잘하는 일=돈 버는 일의 등식이 성립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 좋아하기보다는 그럭저럭 잘하는 일로 돈을 벌고,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자원과 마음을 할애한다.
-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버는 일이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각각이 역할을 나누어 분화돼 있는 존재 방식도 사실은 썩 괜찮다.
- 어떤 일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고 시도만으로 삶을 기대하게 한다. 어떤 일은 생계와 무관한 영역에 남도록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어떤 일은, 이 모든 일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일상을 지탱한다. 

대전시청 앞의 매화나무와 매화꽃. 사진=박한표.

위 문장들을 다시 읽어가며, 나를 비추어 보았다. 잘 할 수 있는 일보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큰 일이 아니라 작은 일부터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의식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의 매화꽃을 보면 알 수 있다. 때가 되면 자기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돈, 명예, 권력을 얻으려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희열을 맛보며 행복하게 하루 하루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일을 위해 약속한 것들을 행하다가 죽는 거다. 산다는 것은 늘 어떤 약속을 지키는 것의 연속이다.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새 아침을 맞이하며 살다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약속들인 그 일들을 하다가 죽는 거다. 

그러니 특별한 삶, 특이한 죽음 같은 건 없다. 요즈음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봄은 왔다.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을 아무런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말없이 봄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 봄이 나를 잔인하게 한다. 깨어나라고 하니까. 

무언(無言)으로 오는 봄/박재삼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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