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최은희 인턴기자 =#서울의 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A(31) 씨는 최근 외조모상(喪)을 치렀다. 회사가 제공한 휴가는 3일이었다. 친조부모 경조사에 지급되는 휴가 일수는 5일이다. A씨는 “친가와 외가의 경조 휴가가 다른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시대가 어느땐데 아직도 사회에 가부장적인 관습이 남아 있는 게 개탄스럽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기업에서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경조사 휴가 일수나 경조비 지급에서 차등을 두고 있다. 부계 혈통 중심의 호주제가 폐지됐지만, 차별이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의 ‘경조사 외가 차별’ 관행은 부계(父系)에만 가족 구성원에 관한 법적 책임이나 권한을 부여하는 호주제의 잔재다. 과거 기업은 상주 역할을 이유로 경조 휴가 및 경조비 지급을 차등을 두었다. 친조부모의 경우 직원이 상주 역할을 할 수 있으나 외조부모의 경우 상주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호주제 폐지에 따라 친부모와 외조부모가 같은 지위 가족으로 인정되고 있음에도 외조부모를 차등 대우하는 것은 차별의 소지가 있다”며 “성 역할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에도 인권위는 “한 운수업자 대표가 외조부모상을 당한 직원에게 유급 휴가를 지급하지 않아 개선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전히 일부 기업에서 관행이 있다는 점이다.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서도 관련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들은 차별적 규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직장인 B씨는 “회사 경조항목 볼 때마다 조부모상만 지원대상이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상사한테 건의했더니 직장 옮기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C씨는 “외조부모상은 조부모상과 달리 경조비가 없다. 연차를 써서 장례식에 참가해야 한다”며 “호주제가 폐지된 지가 언젠데 이런 차별이 있다니 놀랍다”고 토로했다.
헌법 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남녀의 성을 근거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는 ‘성별 등을 이유로 고용과 관련해서 불리한 대우’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정의한다. 다만 경조사 휴가는 현행법상 별도의 규정이 없다. 단체협약 등 노사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기업의 친가·외가 차별 관행은 과거부터 지적되어온 문제점”이라면서도 “경조 휴가는 회사 재량에 달렸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기업이 있다는 게 안타깝다. 현시대 흐름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법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친족의 사망에 따른 경조사 휴가 시 사망한 사람의 성별이나 친가·외가 여부에 따라 휴가 기간을 다르게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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