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청성차(淸聲茶)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청성차(淸聲茶)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기사승인 2021-04-02 17:56:34
박용준 원장
영화 '기생충'에서 상류층을 대표하는 글로벌 IT 기업의 CEO 박사장(이선균 분)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냉장고를 열고 마신 음료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여름철의 무더위를 예방하고 다스리는 ‘생맥산(生脈散)’이다. ‘허약해진 맥을 생생하게 잡아준다’는 생맥산은 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내는 대표적인 한의학 처방이다. 

생맥산은 맥문동, 인삼, 오미자가 2:1:1 비율로 들어간 매우 간단한 방(方)이라서 민간에서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따뜻한 기운으로 온폐지해(溫肺止咳)하는 인삼(人蔘), 시원한 기운으로 폐열을 식히면서 진액을 보충해주는 맥문동(麥門冬), 그리고 오미자(五味子)의 새콤한 맛과 향으로 여름철의 뜨거운 기운에 손상되기 쉬운 폐의 순환을 도와서 몸의 열기를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처방이다. 

이 생맥산에서 인삼을 빼고, 도라지 뿌리를 넣으면 청성차(淸聲茶)가 된다. 청성차(淸聲茶)는 ‘목소리를 맑게 하는 차’라는 이름처럼 인후염 및 목감기 증상을 다스리는데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청성차(淸聲茶)에 들어가는 도라지는 초롱꽃과 다년생 초본이다. 도라지는 평소 반찬으로 먹기에 우리에게 친숙하다. 우리나라 전 지역의 산야, 언덕, 들판의 양지쪽 풀밭에서 자라며 약용과 식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최근 들어선 대량으로 재배하여 임산농가의 주요 소득원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철철 넘친다”는 민요 <도라지타령>에서처럼, 도라지는 우리 민족의 삶에 있어 매우 친근한 식물이다. ‘오래 묵은 도라지, 왠만한 인삼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열이 많은 인삼에 비해 비교적 차가운 성질의 도라지가 인후염 등 급성 감기 증상을 다스리는데 더 효과가 커서 최근 황사와 미세먼지로 지친 폐와 기관지에 활력을 주는 약재로 인기가 높다. 

한의학에서는 도라지를 '길경(桔梗)'이라고 부르며 여러 처방에 자주 사용해왔다. ‘귀하고 길한 풀뿌리가 곧다’라는 뜻의 길경(桔梗)의 다른 이름으로는 경초(梗草), 고경(苦梗), 화상모(和尙帽), 명엽채(明葉菜) 등이 있다. 

동의보감에서 길경(桔梗)은 폐(肺)와 기관지에 사용하는 약물로 기록되어 있다. 

‘폐기를 다스리고, 폐열로 숨이 가쁜 것을 치료한다.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거나, 달여 먹는데, 모두 좋다(理肺氣. 又治肺熱, 氣促. 末服, 煮服幷佳)’

‘목이 아픈 것과 후비를 치료한다. 길경과 감초를 같은 양으로 해 물에 달여 조금씩 먹는다(療咽喉痛, 及喉痺. 桔梗, 甘草等分, 水煎, 細呷之)’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길경(桔梗)은 가루로 만들어 복용할 수도 있고, 달여서 복용할 수도 있으며, 항염증 작용이 있는 다른 약재인 감초(甘草)와 같이 달여서 복용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복용할 수 있는데, 요즘은 끈끈한 잔액 형태의 도라지고, 도라지청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흰색-보라색 도라지꽃(왼쪽)과 길경(桔梗).

현재의 관점으로 살펴보면, 길경(桔梗)에는 섬유질,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고, 단백질도 2.4% 가량 함유돼 있다. 또한 2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다. 사포닌은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주며, 가래를 삭혀 주고 기침을 멈추게 도와주는 거담, 진해작용을 한다. 이와 더불어 사포닌은 콜레스테롤을 저하하는 효능이 있으며, 고혈압을 낮추는데도 효과가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도라지에서 ‘플라티코틴 D’라는 새로운 종류의 사포닌을 발견하였는데, 이 물질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억제하는데 유효한 작용이 있음을 보고했다. 이는 코로나 등 각종 호흡기성 전염성 질환들에 대한 예방과 치료의 중요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도라지를 음식으로 먹을 때는 껍질을 벗긴 후, 찬물에 몇 시간 이상 담가서 아린 맛을 제거한 후 사용한다. 하지만 도라지의 껍질에는 육질 부분에 비해 사포닌 함량이 훨씬 더 높으므로, 약용으로 이용할 때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도라지의 수확 시기는 쓴 맛이 덜하고 껍질이 연한 봄 또는 가을이다. 약성이 더 높은 도라지를 얻기 위해서는 쓴맛이 강해지고 껍질이 더 두꺼운 늦가을 이후에 캐는 것이 좋다. 

국토의 63%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주변의 숲과 산에서 다양한 숲 체험 교육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숲에서의 생생한 체험 교육을 담당하는 숲 해설사들이 도라지꽃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내용이 과학적이면서, 재미 또한 있는 숲 체험 교육을 행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얀 도라지 꽃 속에 개미를 잡아서 넣은 뒤 꽃잎을 가만히 오므려 닫고,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 꽃잎의 색이 하얀색에서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꽃 속에 갇힌 개미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뿜어내는 산성의 개미산의 영향으로 도라지꽃의 색소 성분이 분홍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라지꽃은 자연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과학, 즉 산성과 염기성을 판별하는 과학적 ‘천연 지시약’으로 쓰인 것이다. 

황사와 미세먼지,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도라지와 맥문동, 오미자로 정성껏 달여 만든 청성차(淸聲茶) 한잔을 나눠마시며, 아이들과 주변의 숲을 찾아, 군락을 이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도라지꽃을 감상하며, 자연이 주는 신비를 느껴보면 좋지 않을까?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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