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당’ 이들이 남긴 것

‘탈시설장애인당’ 이들이 남긴 것

기성 정치인과 정책 협약·소수자 간 연대 등 진행
내년 대선·지방 선거에서 활약 기대

기사승인 2021-04-16 07:00:02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나선 11명의 ‘탈시설장애인당’ 후보. 사진=탈시설장애인당 홈페이지 갈무리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이번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가짜 정당’임을 표명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탈시설장애인당’(이하 탈시설장애인당)이 선거활동에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는 장애인 권리에 관한 정책 의제를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지난 1월부터 선거운동에 나섰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11명의 후보가 각각 ▲재난지원체계 마련 ▲탈시설 ▲노동권 ▲이동권 ▲자립생활 지원 ▲교육권 ▲의사소통·보조기기 ▲문화권 확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장애여성 지원체계 구축 ▲건강권 등 주요 장애정책을 공약으로 발표하고 모두 공식 선거 활동이 아닌 만큼 ‘11번’의 기호를 부여받고 거리에 나섰다.

‘탈시설장애인당’을 설립한 이유는 ‘보호’라는 명분 아래 장애인을 시설에 두게 해 사회와 분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지난 1970년대부터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으로 1517개소에서 3만여명이 장애인이 여전히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 내에서도 충분히 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현장 유세에 나선 탈시설장애인당 후보들. 사진=탈시설장애인당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총선 때 장애인단체들은 당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당’을 창당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낙인과 차별의 대상으로 분류하고 가난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긴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슈를 끌어가지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이후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낼 창구가 많이 사라진 상황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는 또 한 번 가짜 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은 “가만히 있어서는 의제화가 되지 않는다. 부동산 선거로 전락할 뿐”이라며 “소수의 사람이 의제화할 수 있는 캠페인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후보가 되기로 했다. 한 명의 후보자가 100만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낼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광화문에서 유세중인 탈시설장애인당 후보들. 사진=탈시설장애인당

◇4개월여간 이어진 활동

“예전에는 가만히 있는데 장애인 정책이 바뀔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바뀌는 그런 건 있을 수 없다”며 “11명의 후보가 나와 홍대입구, KBS 여의도, 국회 등을 돌아다니다 보니 시민들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재보궐 선거를 핑계로 선거활동을 했지만, 이보다 좋은 장애 인식 캠페인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2일 기준으로 관련 기사는 75건이 나갔고 당원도 567명까지 늘었다. 약 3개월의 활동 동안 57회의 현장유세에 준하는 캠페인을 펼쳐 나갔고, 시민들 사이에서도 ‘탈시설’에 대한 개념을 알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부터 활동에 나선 탈시설장애인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후보 가운데, 11인의 주요 서울시장 후보와 접촉한 결과 6건의 정책협약 이행, 2건의 정책 간담회라는 성과를 거뒀다. 우정규 서울장애인철폐연대 조직국장은 “결론적으로 많은 정치인을 만날 수 있는 창구였다”며 “장애인 시민단체가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자고 했을 때는 만나기 어렵다. 후보 대 후보로 탈시설장애인당의 이름을 걸고 만나자고 하니 만남이 성사됐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장애인 정책에만 국한해 정책을 펼치지 않고 소수자와의 연대도 지속했다. 김진숙 지도자 복직연대 투쟁, 세월호유가족 농성장, 구리시 인창C구역 철거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농성장 등 기성정치인이 가지 않는 곳에서도 함께 했다. 변 정책국장은 ”저희가 이미 소외됐던 사람들이라 가장 우리에게 걸맞은 자리에서 함께 한 것“이라며 ”이름은 탈시설장애인당이지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우정규 조직국장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픈 건 알겠는데, 니들이 이런다고 해결되냐’, ‘여기서 이러는 건 아니지 않냐’ 등과 함께 욕도 많이 들었다”며 “그중에서도 ‘이들은 평생 차별받아온 것’이라고 말하며 이해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위해 지하철에서 타고 내릴 때 기관사가 이 역은 위험하니 깔판을 챙겨준 적도 있었다. 지지도 많이 받았다. SNS에서도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왜 위법이냐’라는 글도 있었다”고 말했다.

탈시설장애인당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가짜정당을 표명했지만, ‘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선관위는 주장했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탈시설장애인당이 잘못됐다면, 새마을식당, 명동성당도 잘못된 것인가“라며 ”선관위에 왜, 무엇이 위반인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명확한 답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나 ‘가짜정당’, ‘가짜후보’라고 써놨다. 그렇게 가짜라고 주장했는데, 진짜라고 하니 억울했다“고 말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장애인정책 협약을 촉구했다. 사진=탈시설장애인당.


◇결국, 오세훈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됐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등의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오세훈 시장에게 이전에 했었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지만, ‘구체적인 약속’을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변 정책국장은 “서울시가 예전에 계획한 대로 해달란 것”이라며 “했던 약속을 다 지키라고 했다고 ‘강성’으로 분류한다. 약속해놓고 말을 바꾸면 안 된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2008년에도 ‘저상버스 신속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번에도 똑같다. 재임할때도 약속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확한 기한을 정하지 않고 근거도 없이 시혜적으로 빨리 해주겠다는 식의 정책결정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는 장애인 복지 정책이나 권리에서 선두의 역할을 많이 해왔다. 서울시의 장애 관련 사업은 시비 100%인 경우가 많아 행정가가 쥐락펴락하기 따라 달라진다”며 “오 시장은 중증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다. ‘탈시설’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서울시에서 하는 사업들이 수도권에 이어지고, 지방까지 퍼지게 되고, 이후 국가 정책으로 되기도 한다. 전국민의 선봉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는데 역행할 것 같아 아쉽다. 이런 것들이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아쉬워 했다.

◇장애인들의 탈시설, 가능할까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이 많다. 장애인을 직접 만나보지 않은 정책결정자들은 장애인들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어 ‘시설’에서의 격리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밥 사 먹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정치다. 그만큼 고차원적인 행동인데, 이번 ‘탈시설장애인당’ 후보 11명들은 해냈다”며 “의사표현이 극대화된 것이고 행동력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정치도 할 수 있는데 지역사회에서 못 살 이유가 무엇인가. 장애 당사자분들도 자신감을 잃을 필요가 없다. 그런 입장에서 이번 선거운동이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직접 밥을 해 먹는 경우도 적지 않은가”라며 “인간은 누구나 사회 속에 유기적으로 살아간다. 장애인은 지역사회로 나오면 네트워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인프라를 만들고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면 못 나올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과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국장은 앞으로도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노상우 기자


◇이후 활동 계획은

“내년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지방선거에서 장애인이 당선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여태껏 한 명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 보궐선거에만 11명의 후보가 나온 것”이라며 “전국 255개 시·도에 한 명씩 다 후보를 내보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된다면 난리가 날 것. 지방선거에서 더 많은 장애 의제를 본격적으로 알릴 수 있었으면 한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이번 선거 동안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책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이었다고 평가했다. 향후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이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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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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