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매몰됐던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진 돌은 과연 어디까지 굴러갈 수 있을까.
◇'정상'을 외치는 사람들…그들은 왜?
지난 3월 슈돌 측이 사유리 모자의 합류 소식을 밝히자 온라인에선 갑론을박이 일었다. 사유리의 출연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혼을 부추긴다'며 출연을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25일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16일 오전 10시 기준 4021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말한다. "결혼을 장려하고 정상적인 출산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건만 슈돌은 오히려 비혼모를 등장시킨다"며 "청소년·청년들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일본여자를 등장시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는 미혼인 여인이 갑자기 일본 정자은행을 통해 정자를 구해 임신 후 출산 그리고 방송 출연까지. 바람직한 공영방송의 가정상을 제시해주시길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한 시민단체가 KBS 앞에서 사유리의 출연을 반대하는 규탄 기자 회견을 열기도 했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의 홍영태 운영위원장은 "결혼하기 싫으면 정자은행을 통해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고 살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려고 하기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유리의 슈돌 출연만 반대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이들은 비혼 출산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정상적으로' '바람직한 가정상'을 언급한다.
남녀의 결혼과 출산으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란 주장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입양가족, 동거가족, 딩크족(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 등은 모두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지켜온 가족의 가치가 훼손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배경이다.
◇"정상가족은 무엇인가" MZ세대가 묻다
반면 사유리의 방송 출연에 응원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20대 미혼 여성 김모씨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족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결혼과 출산이 기준이라면 미혼모(부)가정은 비정상가족이고 이혼가정 정상가족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방송에서 사유리가 혼자 애 키우면서 고군분투하는 것 보면 '저 정도 재력과 능력이 있어도 혼자 키우기 힘들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비혼 출산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30대 미혼 여성인 신모씨는 "방송 하나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꿀 것이란 시각이 더 놀랍다"며 "오히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40대 미혼 직장인 박모씨는 "고용, 주택, 교육문제는 물론 개인적인 가치관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정자은행을 이용한 비혼 출산이 가능해지면 청년들의 비혼 선언이 늘어날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자녀를 둔 엄마아빠들은 대부분 환영했다. 가족의 형태는 다르지만 육아라는 전쟁을 함께 치루고 있는 '전우'로 바라봤다.
두 자녀를 둔 김모씨(34·여)는 "슈돌이 지금까지 아빠 혼자 하는 육아만 보여줬는데 사유리를 통해 엄마가 혼자하는 육아에 대해 보여줄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 배울 점도 많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세 자녀를 둔 유모씨(37)는 "우리나라는 정자은행을 이용해 비혼 출산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혼 출산을 하고 싶다면 사유리처럼 외국밖에 방법이 없다더라"라면서 "그 정도 의지라면 '이들이 얼마나 아이가 간절했던 걸까'란 생각이 든다. 타인이 왈가불가할 사안이 아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외에도 "아이를 낳고 싶어서 하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꼭 부모가 둘이 있다고 해서 자녀가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양육하는 부모가 얼마나 행복하고 바르게 키우냐가 중요하다" 등 반응도 있었다.
◇"건강가정기본법,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부추겨" 주장도
시민단체들은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이 이같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상황이 1980년대 이혼 여성의 방송 출연을 금기시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2004년 제정된 이 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말한다.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들은 "몸이나 정신에 아무 탈 없이 튼튼하다는 의미의 '건강'이 가정의 수식어가 되는 법은 현재의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의 삶을 반영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14일 기자회견에서 "2005년 출산해 미혼모로 살아왔다"면서 "아이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아이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이 또한 엄마와 사는 가정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진방 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도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게 하나. 편견이 없어져야 스스로 생을 마감한 변희수 전 하사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고, 사유리와 같은 비혼 출산이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면서 "(한부모도 아이를) 잘 키우겠다. 더는 낙인찍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변화하는 '가족'…정상가족 관점 벗어나야
가족의 형태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다.
정상가족의 원형이던 4인 가구 이상 비율은 올해 처음으로 20%대가 무너졌다. 지난 7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4인 가구 이상은 454만7368가구(19.6%)로 급감했다. 반대로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40%에 육박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가치관도 변화하는 추세다.
2020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혼인신고 기준)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1년 전보다 10.7% 줄었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전국 만 13세 이상 약 3만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사회조사'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반드시 해야 한다'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절반(51.2%)에 그쳤다. 2010년 64.7%와 비교하면 10년 새 14%포인트가량 감소한 것이다.
특히 국민 10명 중 3명은 결혼 없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3세 이상 응답자의 30.7%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결혼 기피는 저출산 문제와도 연결된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14일(현지시간) 발간한 2021년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 '내 몸은 나의 것'(My Body Is My Own)에 실린 통계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와 같은 1.1명으로 198개국 중 198위였다. 2년 연속 최하위다.
박시내 통계개발원 서기관은 '한국사회의 혼인·출산 특성과 이행' 보고서를 통해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상가족 관점에서 벗어나고 결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서기관은 "지난 수십 년간 혼인과 출산의 주력 세대인 청년층의 가치관 변화는 제도 및 정책변화보다 빨랐으며, 이것이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라며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는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며 미래세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히어로 '슈퍼맨'의 육아 도전기"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기획 의도다. 아빠들만 출연해 '슈퍼맨=아빠'라고 이해해 온 시청자가 대부분이지만 사실 기획의도대로라면 엄마인 사유리도 슈퍼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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