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통신] 꼴 보기 싫어 '제로 웨이스트' 시작했다

[놀이터통신] 꼴 보기 싫어 '제로 웨이스트' 시작했다

'용기내 챌린지' SNS서 인기 끌며 확산

기사승인 2021-05-03 08:01:47
인천의 제로 웨이스트 매장인 '소중한 모든것'. 사진=임지혜 기자
[쿠키뉴스] 임지혜 기자 =얼마 전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의 주방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 바로 '설거지 비누'다. 언제나 설거지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물세제로 하는 것 말곤 생각해본 적 없는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배달음식과 택배량이 크게 늘었다. 그만큼 플라스틱 일회용 용기, 비닐봉지 등 각종 쓰레기는 양손에 들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다.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 번뿐인 분리수거 날이 되면 여러 집에서 모인 플라스틱들로 산이 만들어졌다. 이를 정리해야 하는 경비원도, 그 앞에 또 많은 쓰레기를 내려놔야 하는 나 역시 고역이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 접하게 된 것이다.  
  
◇뜨는 '가치 소비'…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는 사람들

최근 환경과 나 자신을 위한 '가치 소비'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요즘 쓰레기 없는 소비, 이른바 '제로 웨이스트'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3일 인스타그램에서 #제로웨이스트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이 18만여개가 나온다. 게시물을 살펴보면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직접 그릇을 들고 음식점에 방문해 포장하는 모습, 카페에서 텀블러를 사용하는 모습이 많다. 생분해되는 천연 비누를 사용하거나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 등을 사용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제로 웨이스트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환경 보호를 위해서다. 관련 커뮤니티 등에는 집콕 시간이 늘면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들의 가입글이 상당수다. 

환경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최근 들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추세라면 205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누적 발생량이 330억 톤(t)에 달할 것이란 사실과 각종 환경 문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언론 보도 등은 무관심했던 이들을 자극했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고 결정한 점도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위기감을 키웠다. 

물론 모두가 환경 보호 때문에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 나와 같이 집 안에 줄지은 플라스틱 통이 보기 싫어서, 많은 양의 쓰레기를 버리기 귀찮아서 제로 웨이스트에 동참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생후 5개월 아이를 둔 이모씨(34)는 "아이가 태어나고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샤워용품이 아닌 비누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한 누리꾼은 "우연히 제로 웨이스트 매장에 갔다가 스테인리스 빨대가 예뻐서 구매하고, 쓰임에 만족해 그 뒤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면서 하나씩 하나씩 습관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천의 제로 웨이스트 매장인 '소중한 모든것'. 사진=임지혜 기자
◇리필 스테이션·친환경 소비재 관심↑

제로 웨이스트 열풍과 함께 MZ세대를 중심으로 SNS상에서 '용기내 챌린지'가 확산하고 있다.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용기를 이용해 음식, 식자재 등을 포장하는 운동이다. 지난 2월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전통시장에서 용기내 챌린지에 동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류준열, 박진희 등 유명 연예인도 SNS를 통해 용기내 챌린지 동참을 촉구하기도 했다. 

실생활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착한 소비를 돕는 매장도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관련 매장에는 덩굴 식물인 수세미를 말려 만든 세정 용품과 대나무 칫솔, 스테인리스 빨대, 양모볼, 재생용지로 만든 수첩, 친환경 비누·세제 등 생활용품이 가득하다. 썩지 않은 플라스틱 제품과 달리 계속 사용하거나 다 쓰고 버려도 대부분 자연 분해돼 쓰레기가 거의 남지 않는 소재들을 판매한다. 

화장품·세제 등을 소분해 내용물만 판매하는 '리필 스테이션'도 있다. 소비자는 집에서 내용물을 담을 통을 가져와 필요한 만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제로 웨이스트 관련 매장은 포장을 최소화하고 재사용을 위해 소비자가 사용한 종이백이나 종이완충재, 비닐완충제 등을 모으고 있다. 플라스틱 뚜껑과 같이 분리수거가 어려운 작은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방앗간에 보내 치약짜개, 티코스터 등 업사이클 제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인천의 한 제로 웨이트 매장 관계자는 "성별, 연령과 관계없이 많은 분이 제로 웨이트에 관심을 갖고 찾아 주신다"면서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면서 관심을 갖는 분들도 많고 SNS 등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가 알려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환경 운동이 유행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김밥집에서 한 첫 용기내 챌린지 활동. 사진=임지혜 기자
◇제로 웨이스트, 번거로움 있지만 가치 있어 

플라스틱 없는 삶을 위해 하나씩 바꿔 나가고 있다. 주방 세제 대신 설거지 비누, 아크릴 수세미 대신 천연 수세미가 자리를 잡았다. 
 
용기내서 용기도 내봤다.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가져온 용기에 음식을 담았다. 장바구니에 음식이 담긴 용기와 구매한 채소, 과일을 넣었다. 

며칠 전과 소비 내역은 비슷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쓰레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용기를 들고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쓰레기가 나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비닐봉지, 플라스틱 일회용기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환경과 자신을 위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으로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어떨까.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