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임정희 “내 존재가 미러클”

[쿠키인터뷰] 임정희 “내 존재가 미러클”

기사승인 2021-05-26 07:00:05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마이크 앞에 선 여자는 발을 구르고 박수를 쳤다. 데뷔곡을 녹음하는 부스 안이었다. 연습생 생활 7년 만에 얻은 ‘내 노래’. 속으로만 끓던 열정은 목소리로, 몸짓으로 터져 나왔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아픔을 말하고 / 기타를 품에 안고서 울었어” 지금은 ‘K팝 대부’가 된 박진영, 방시혁이 작곡한 이 곡은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Music is my life). 가수 임정희의 데뷔곡이다.

임정희는 연습생 시절 ‘거리의 디바’로 불렸다. 피아노와 스피커를 옆구리에 끼고 거리를 누비며 공연해서다. 함께 연습하던 친구들이 TV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왜 나에겐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한숨 쉬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거리에서 공연하는 영상이 광고주 눈에 들면서 임정희에게도 문이 열렸다. MP3 플레이어 광고에 넣으려고 부른 노래로 그는 가수가 됐다.

‘음악은 내 삶’(Music is my life)이라는 선언은 20대 임정희 그 자체였다. 16년이 흘러 중견 가수가 된 그는 “시간과 연륜이 쌓이면서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라는 문장이 좀 더 넓은 의미로 와 닿는다”고 돌아봤다. “‘음악’ 대신 다른 단어를 넣으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아요.” 지난 20일 신곡 ‘낫 포 세일’(Not4$ale)을 낸 임정희를 서울 동교로12안길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낫 포 세일’은 임정희가 3년5개월 만에 내놓은 신곡이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해 “한 마디 말로 응원 받고 싶을 때 나를 북돋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 곡에서 임정희는 자신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가격을 매기는 이들에게 선을 긋는다. 음원 스트리밍 수나 음반 판매량 따위로 줄 세워지던 이의 고충이었을까. 임정희는 “가수가 된 후,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서 생긴 고민이 있었다”면서도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상이 만든 기준에 따라 내 가치를 매기려는 이들에겐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노래에요. 지치고 막막할 때 꺼내 들으며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를 되새길 수 있는 노래고요. 쳐다만 봐도 현기증이 날 만큼 높아진 기대와 기준치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어요.”

메시지는 비장하지만 음악은 포근하고 흥겹다.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모타운 사운드를 따와 빈티지한 느낌을 준 덕이다. 임정희는 “맥주 한 캔으로 나를 위로해주려는 날, 편의점에 가면서 듣기 딱 좋은 노래”라며 웃었다. 소속사 대표이자 친구인 가수 김태우는 “무한 긍정 에너지”로 그를 응원했다고 한다. 10대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음악동료이자 ‘낫 포 세일’을 함께 만든 작곡가 김세미와 늑대도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 과정을 즐기자’며 힘을 보탰다.
“내 존재가 미러클. 헤라클래스의 힘이 있지, 내겐.” 임정희는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낫 포 세일’ 속 구절로 이 가사를 꼽았다. “우리 안에 있는 기적 같은 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응원을 담은 노랫말이라, 부르면서도 힘이 나요.” 데뷔곡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에서도 그는 “언젠가 내게 기회가 올 거야”라며 희망을 노래했다. 다만 품의 너비가 달라졌다. 자신의 꿈만을 품던 임정희의 노래는 이제 다른 이의 꿈을 함께 응원할 만큼 넉넉해졌다.

한때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같은 가수를 꿈꿨던 임정희는 이제 ‘음악으로 덕업일치(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음)를 이루리라’고 다짐한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억만금을 준대도 팔지 않을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짧지만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진부한 대답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제 목소리요. 제가 노래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차지하거든요. 목소리는 저의 전부에요.”

wild37@kukinews.com / 사진=P&B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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