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는 작은 인간이다!”…“그래서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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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는 '법률 업데이트'

기사승인 2021-06-26 07:00:46
임신중지는 여성과 태아의 권리가 대립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치부된다. 낙태죄 폐지는 인권과 생명윤리 분야의 토론 주제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소모적인 도덕 논쟁에서 벗어나 법률적, 정책적, 의료계 쟁점으로 낙태죄 폐지를 뜯어본다.

①낙태죄 폐지는 ‘법률 업데이트’
②임신중절 제한적 허용, 고려사항은 ‘환자의 건강’
③의료계, 임신중지 허용기간 ‘10주’ 주장 이유는
④합법이면 ‘무분별하게’ 이뤄진다고?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낙태죄가 폐지된 이유는 여성의 선택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앞서서가 아니다. 사문화된 낡은 법률을 개선한 것이다.

낙태죄는 지난 1953년 제정됐다. 형법 제269조 제1항 자기낙태죄는 자신의 의지대로 임신중지 수술을 받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했다. 제270조 제1항 의사낙태죄는 의사가 임신중지 수술을 해주는 행위를 범죄로 명시했다. 예외적으로 모자보건법 14조가 강간으로 인한 임신, 혈족간 임신, 부모의 신체질환 등 임신중지 허용 조건을 나열했다. 

지난해까지 66년동안 모자보건법 14조에 해당하지 않는 임신중지 수술은 시행될 수 없었다. 하지만 불법 임신중지 수술이 음성적으로 시행됐다. 합법적 임신중지 수술은 2017년 기준 3787건이다. 국내 전체 임신중지 수술 건수는 연 5만건으로 추정된다. 임신중지 수술의 93%가 불법으로 이뤄진 셈이다. 

대부분의 수술이 불법으로 이뤄졌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낙태죄 기소 건수는 연간 9.1건, 그 중 구속기소된 사건은 총 2건에 불과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1명이 낙태죄로 구속됐다. 2019년 이후 낙태죄 사건은 100% 불기소 처리됐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11일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두 조항은 지난해 12월31일부로 효력을 잃었다. 범죄 발생을 막거나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사회와 동떨어진 법률을 손본 것이다.

낙태죄에 앞서 혼인빙자간음죄가 사문화된 법률로 폐지 수순을 밟았다. 형법 304조가 규정한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에 대해 처벌하는 죄’였다. 2000년대 이후 이 법률을 적용해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는 사례는 드물었다.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으로 전제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200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따라 2012년 12월11일부로 혼인빙자간음죄는 형법에서 삭제됐다.

실효성을 잃은 법은 당연히 정리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과거의 사법제도는 민사법에 비해 형사법을 과대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조항이 발견되기도 한다. 사회의 변화에 맞춰 법도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국민의 생활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취재 도움=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보건복지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2018, 국가인권위원회 <낙태죄에 관한 헌법소원에 대한 의견> 2019.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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