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는 작은 인간이다!”…“그래서요?”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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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수술, 합법이면 ‘무분별하게’ 이뤄진다?

기사승인 2021-06-27 07:00:22
임신중지는 여성과 태아의 권리가 대립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치부된다. 낙태죄 폐지는 인권과 생명윤리 분야의 토론 주제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소모적인 도덕 논쟁에서 벗어나 법률적, 정책적, 의료계 쟁점으로 낙태죄 폐지를 뜯어본다.

①낙태죄 폐지는 ‘법률 업데이트’
②임신중절 제한적 허용, 고려사항은 ‘환자의 건강’
③의료계, 임신중지 허용기간 ‘10주’ 주장 이유는
④합법이면 ‘무분별하게’ 이뤄진다고?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낙태죄를 폐지한다고 임신중절 수술이 늘거나 줄지 않는다.

낙태죄 관련 법률 마련 현황에 따라 전 세계 국가들은 4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임신중절 수술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전면금지’ 국가 ▲의학적,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처벌이 면제되는 ‘제한’ 국가 ▲임신중절 수술이 범죄가 아닐 뿐, 아무런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인 ‘비범죄화’ 국가 ▲임신중절 수술을 합법적으로 실시할 수 있고, 제도적 지원을 갖춘 ‘합법’ 국가 등이다. 

전면금지 국가의 대표 사례는 칠레다. 의학적·사회경제적 조건을 불문하고 임신중절 수술을 처벌한다. 우리나라는 1953년부터 66년간 제한 국가였다. 올해부터는 낙태죄가 효력을 잃으면서 비범죄화 국가가 됐다. 합법 국가는 독일, 그리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6개국의 임신중절 수술 통계를 종합한 자료를 보면, 임신중절 수술 허용 여부와 수술 건수 사이에 일관된 상관관계가 없다. 15~44세 여성 1000명당 임신중절 수술 건수는 우리나라가 15.8(2010년)이다. 합법 국가의 수치는 우리나라보다 낮은 경우가 많았다. 독일 7.2(2012년), 그리스 7.3(2008년), 스웨덴 18(2015년), 네덜란드 8(2014년) 등이다. 칠레는 0.5(2005년)으로 집계됐다.

즉, 임신중절 수술이 합법이라고 해서 많이 시행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불법이라고 적게 시행되지도 않는다. 전면금지 국가가 합법 국가로 전환하면 임신중절 수술 건수가 변할 것이라는 예측도 할 수 없다.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수술은 집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전면금지 국가와 제한 국가의 통계치는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합법화와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자 임신중절 수술이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도 보고됐다. 독일은 지난 1993년부터 임신중절 수술을 사실상 합법화했다. 임신중절 수술 전 의무적으로 임신갈등상담을 받도록 제도화했으며, 의료보험 혜택을 적용했다. 혼인 여부와 관계 없이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포용적 가족정책도 강화했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25년간 독일의 임신중절 수술 건수는 23.6% 줄었다.

독일 통계청(StBA)이 집계한 임신중절 수술 건수는 1996년 13만899건에서 2006년 11만9710건으로 감소했다. 이후 10년간 반등 없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6년에는 9만8721건까지 줄었다. 지난해에는 9만9948건으로 집계됐다.

임신중절 수술 건수의 증감은 사회적 지원체계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임신중절 수술을 고려하는 여성에게 수술과 출산을 비롯한 다양한 선택지가 보장되면, 여성 스스로 자신에게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낙태죄 폐지의 부작용을 거론하기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신중절 수술 관련 사회적 지원체계가 전무한 상태로, 낙태죄를 폐지 이전과 다름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우려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했을 때 나오는 사고방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임신중절 수술은 개인에게 즐거운 경험이 아니며, 원치 않는 임신을 끝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의료행위다. 임신중절 수술에 생명윤리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현실적인 법률과 사회서비스 도출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재 도움=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지영 한국여성민우회 건강팀 상근활동가, 보건복지부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2018.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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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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