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물 준공 연도 맞혀라"... 여성 청소노동자 괴롭힌 '시험 갑질'

[단독] “건물 준공 연도 맞혀라"... 여성 청소노동자 괴롭힌 '시험 갑질'

50대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서 숨진 채 발견
유족 "제초작업 등 업무 과중- 군대식 관리로 고통"
오늘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

기사승인 2021-07-07 06:10:01
서울대학교 정문. 연합뉴스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였던 고(故) 이모(59·여)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사망했다. 유가족은 학교 측에서 업무와 상관없는 준공연도를 외워 시험을 보게 하는 등 갑질이 심각했다고 토로했다. 

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유가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이씨는 서울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로 확인됐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48분 막내딸과 통화하며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집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오후 10시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11시 휴게실에서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이씨의 남편 A씨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일어나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며 “너무 기가 막힌다. 아직까지도 이게 현실인지 구분이 어렵다. 자녀들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2019년 11월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로 채용되기 위해서는 ‘국민체력100’이라는 인증기준을 일정 수준 넘어야 한다. 20m 왕복 오래달리기, 교차윗몸일으키기 등 항목을 문제없이 통과했다. 이씨는 병치레를 한 적 없는 ‘건강체질’이었다. 지난 2015년 NGO 해외봉사단으로 파견되기 전 받은 정밀검사에서도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대 관악생활관 안전관리팀에서는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진행했다. 사진은 고 이씨가 봤던 시험지. 유가족 제공 
건강했던 이씨가 갑작스럽게 숨진 이유는 무엇일까. 유가족은 이씨가 사망하기까지 학교 측의 갑질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1일 청소노동자를 총괄하는 안전관리팀장이 새롭게 임명됐다.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같은 달 9일부터 청소노동자들은 시험을 봐야 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자로 쓰게 했다. 기숙사의 개관연도와 각 건물의 준공연도 등도 출제됐다. “다음 중 대학원 동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921~926동의 준공연도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시험을 본 후 채점했고,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공개했다.

A씨에 따르면 이씨는 “준공연도와 청소 업무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며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어 “점수가 높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무안을 준다”며 “우리를 군대처럼 다루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지시사항과 억압적인 분위기로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서울대학교 관악생활관 안전관리팀에서 작성한 근무성적 평가서. 유가족 제공
갑질은 더 있었다. 안전관리팀장은 청소노동자들이 제초작업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평일 근무 시간을 기존 1일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남는 인건비로 제초작업 외주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청소노동자에 대한 근무성적 평가서도 새롭게 도입됐다. 복장 준수 등의 항목도 있었다. 앞서 회의에서 정장 등 옷을 단정하고 예쁘게 입고 오라는 지시가 전달됐다. 

이씨는 학교 측의 갑질에 줄곧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제초작업 관련 근무시간 축소가 논의되자 “임금 문제는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임금을 깎는다는 말은 협박으로 들린다”며 맞섰다. 이에 안전관리팀장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A씨는 “아내는 (학교 측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이의제기를 했다”면서 “자연스럽게 관리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윗사람들은 이러한 갑질을 다 알고 있던 것인지 궁금하다. 노동자를 직원으로 생각하긴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은 7일 오후 12시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이씨의 사망 관련 규탄 기자회견을 연다. A씨와 이씨의 동료들도 참석한다. A씨는 “아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동료들이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참지 못할 것”이라며 “어떤 사람도 말도 안 되는 갑질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서는 안 된다. 정부도, 고용노동부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대 측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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