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진수‧최기창‧김은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가짜뉴스 구제책’이라고 지칭하며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와 언론계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권력형 비리, ‘미투’ 보도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6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은 가짜뉴스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이고 언론 자유에 따른 언론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안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가짜뉴스 피해 보호법’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에는 물음표가 제기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에서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의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위헌적 요소가 많다고 지적한다.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다.
김신 김앤컴퍼니 변호사는 “불이익을 가하는 조치를 규정하는 법 규범에 대해서는 더욱 명확성의 원칙이 관철돼야 한다. 그러나 언론중재법에는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정의 조항이나 예시적 열거조항이 없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 수정한 조항 때문에 취재원 진술에 의존하는 유명 인사의 성비위에 관한 미투 보도 등은 기사화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지난 25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에서 ‘명백한’이라는 단어를 뺐다.
김 변호사는 “‘명백한’을 삭제하면서 언론은 ‘명백하지 않더라도’ 고의‧중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됐다. 다소 불확실한 사실 혹은 입증 자료가 취재원의 진술에 의하여만 하는 경우에는 기사를 낼 수 없게 될 수 있다”며 “결국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허위 사실을 보도하는 것만으로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은 허위에 따른 평판상의 피해가 발생해야만 성립된다. 허위 사실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의 보도지침과 유사하다고도 했다. 그는 “과거에도 허위 사실만으로 처벌했던 사례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헌법이 부당하다는 말을 막기 위해서 긴급조치를 내렸다. 현재는 위헌 판정이 났다. 명예훼손도 아닌데 허위 사실을 보도한 것만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진 않다. 새로운 보도지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언론계 역시 언론중재법이 통과될 경우 언론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언론의 입을 막고 기자의 펜대가 꺾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계는 언론중재법이 통과된다면 ‘입막음 소송’이 늘어나 추가 취재나 보도가 막힐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권력형 비리의 경우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나간 이후 소송이 걸리면 추가 취재가 힘들어져 진실이 드러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비판이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첫 번째 보도가 나오면 소송부터 제기해서 언론사 기자들을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빈번해질 것이다. 기자 입장에서는 옳은 보도를 했어도 소송전에 시달리느라 추가 취재를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과실 입증 책임이 사실상 언론사에 있다는 점 역시 독소조항이라고 강조했다. 보도 내용을 부인할 경우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취재원, 제보자를 공개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기자가 허위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선 취재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공익 제보자도 많이 줄어들어 권력형 비리 보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법의 적용 대상도 논란이다. 민주당은 현직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가족이나 측근, 퇴직 고위공직자 등은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린 최서원(최순실) 씨 등은 언론중재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의 처가 논란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학 표창장 위조’ 사건 관해서도 소송을 걸 수 있다.
김 회장은 “권력형 비리 보도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민주당이 고위공직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이나 측근 등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법의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열람차단청구권’(17조의2)도 문제로 꼽힌다. 청구를 통해 열람 차단이 받아들여지면 인터넷신문·포털에서 기사를 읽을 수 없게 된다. 사실상 ‘기사 삭제’와 비슷한 효과다. 정부나 기업이 열람차단을 청구할 경우 독자들이 권력형 비리 보도를 접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 회장은 “법의 취지는 공감한다. 가짜뉴스를 척결하고 언론 피해에 대한 실질적 구제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언론중재법은 오히려 기대 효과보다는 언론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법”이라고 일갈했다.
오히려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윤석열 캠프의 언론특보를 맡은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은 “언론중재법은 언론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악법이 통과되면 모든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기자와 언론인만 언론중재법의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한편 민주당 지도부는 가짜뉴스 피해 보호를 위해 언론중재법 통과가 시급하다며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준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이후 “언론중재법을 8월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원내대표단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언론중재법 자체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했다.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