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 123년 후… 정치는 여전히 ‘남성 독과점’

‘여권통문’ 123년 후… 정치는 여전히 ‘남성 독과점’

[여권통문 유효기간 123+a] ① “어찌 귀·눈 어두운 모양으로 규방만 지키는가”

기사승인 2021-09-01 06:43:51
<편집자주> 9월1일은 한국 여성인권운동사를 기리는 법정기념일 ‘여권통문의 날’이다. 1898년 9월1일 서울 북촌에서 300여명의 여성이 연대해 쓴 국내 최초 여성인권선언문 ‘여권통문’이 발표됐다. 여성도 정치에 참여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며, 가사노동은 여성의 운명이 아니라는 선언이 담겼다. 123년 전 여성들이 호소한 △참정권 △경제권 △평등권은 2021년 여성들에게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①‘여권통문’ 123년 후… 정치는 여전히 ‘남성 독과점’
②‘여권통문’ 123년 후… 월급은 여전히 ‘남성의 60%’
③‘여권통문’ 123년 후… 가사노동 여전히 ‘독박·공짜’

이미지=한성주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귀와 눈이 어두운 모양으로 규방만 지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로다.’(여권통문 원문 발췌)

여권통문을 쓴 1898년 여성들은 정치에서 소외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고종이 재임 중이던 광무 2년 당시 평범한 여성의 국정 참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50년 뒤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정에 여성이 등장했다. 임영신(1899~1977) 전 의원은 초대 행정부와 입법부에 포함된 유일한 여성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교육자로 활동했던 임 전 의원은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초대 내각의 상공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듬해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임 전 의원은 조선여자국민당 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같은 시기 평범한 여성들도 참정권을 얻었다. 1948년 7월17일 헌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우리나라 국민은 성별과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동등한 투표권은 국회의 성비 균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임 전 의원이 당선된 보궐선거에 앞서 진행된 첫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198명은 전원 남성이었다. 1950년 2대 총선에서는 의원정수 210명 가운데 재선된 임 전 의원과 대한부인회 소속 박순천(1898∼1983) 초선의원 2명을 제외한 208명이 남성이었다.

다시 70년이 흐른 현재 국정에 반영되는 여성의 시각은 여전히 미미하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남성은 243명(81%)인 반면, 여성은 57명으로 19%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 국회의원 평균 비율 28.8%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그동안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17대 13%(39명), 18대 13.7%(41명), 19대 15.7%(47명), 20대 17%(51명) 수준에 머물렀다. 2004년 선출된 17대 국회 이전까지는 56년간 줄곧 여성 의원 비율이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대책으로 도입한 여성후보할당제도 판도를 바꾸지 못했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지역구선거 후보 중 30% 이상, 비례대표 후보 중 50%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구 후보공천 할당제는 권고사항이라 강제력이 없다. 정당은 이를 준수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21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47명 중 여성은 28명으로 60%에 달한다. 반면 지역구 의원 253명 중 여성은 29명으로 11%에 그친다.

여성의 과소대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정책의 질적 개선이 요원하다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낙태죄 폐지 이후 여성들에게 안전한 임신중단을 보장하는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며 “불법촬영물 유포 범죄가 고질적 사회문제로 거론되어 왔지만, 효과적인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과 법률을 결정하는 정치권이 남성 독과점으로 운영된다면 여성들은 앞으로도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제도 손질이 선결 과제로 꼽혔다. 안 사무국장은 “지역구에서도 비례대표만큼 많은 여성 의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여성후보할당제를 강화해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다수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승자독식 원리의 선거제를 수정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해 정치권의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 도움: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모윤숙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5차 근로환경조사>, 여성가족부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한국노동연구원 <근로 여성 50년사의 정리와 평가>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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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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