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청년기자단] 김 병장님, 전역하실 시간입니다

[쿠키청년기자단] 김 병장님, 전역하실 시간입니다

기사승인 2021-10-04 08:09:01
[쿠키뉴스] 김지원 객원기자 =물 한잔도 눈치 보며 마셔야 하던 이병 시절, 누군가 내게 ‘전역하면 뭐 할 거냐’는 질문을 던졌다. 장장 2년의 세월을 눈앞에 둔 까까머리 김 이병에겐 그저 막연한 질문이었다. 수많은 선임들의 농담처럼, 전역은 신기루 같은 존재라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저 내일만 바라보며 하루를 버텼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억겁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전역을 맞이한 김 병장. 변한 것은 강산뿐이 아니었다.
 
먼저, 오랜만에 카페를 방문했다. 음료를 주문하려던 찰나, 점원의 입에서 낯선 문장이 흘러나왔다. “QR 체크인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부대에선 QR 체크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마음에 휴대 전화가 안 터진다는 거짓말과 함께 옆으로 빠졌다. 그리고 내 뒤를 이어 자연스럽게 QR 체크인을 하고 주문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는 가만히 있다간 사회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확 깨었다.
 
복학을 앞두고 한 학기 먼저 복학한 친구를 만났다. 학교는 당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입대 전에는 써본 적 없는 화상 수업 프로그램을 미리 익혀둘 필요가 있었다. 친구를 앞에 앉혀두고 A부터 Z까지 비대면 수업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본인이 복학할 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고생이었다는 친구의 생색은 고마우면서도 짠했다.
 
덕분에 수업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마무리 조별 토론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 교수님이 갑자기 폭탄 같은 한마디를 던지셨다. “이제 세부 세션으로 이동해서 조별 토론 이어가면 됩니다.” 세부 세션에 관해선 미처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떠난 온라인 강의실엔 나와 교수님, 두 명만 남았다. 돌이켜 보면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당시에 느낀 당혹감은 사회와의 높은 벽을 체감하기에 충분했다.
 
가끔 이겨내기 힘든 고독감도 찾아왔다. 항상 함께하던 대학 동기들은 졸업을 앞두거나 이미 취업해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신입생의 마음 그대로 우두커니 캠퍼스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렇게 학기를 마치고, 군 생활을 함께했던 동기를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점점 과거로 향하던 이야기는 결국 군 생활에 도착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문득 우스운 생각이 맺혔다. “우리 완전 복학생 아저씨 다 됐다, 그치?”
 
군인과 복학생을 ‘아저씨’라 부르기엔 아직 너무 젊다. 따라서 그 소중한 젊음을 국방을 위해 빌려 갔다면,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국방의 의무가 지닌 숭고한 가치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들이 피땀 흘려 바친 젊음에 대한 보상과 책임은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사회가 늦게나마 그들의 처우 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사회가 계속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적어도 전역자가 자신의 군 생활을 후회하는 일이 더는 없을 것이다.
 
최근 드라마‘D.P.’를 인상 깊게 봤다. 웃으며 지난 군 생활을 회상하는 동시에 가슴 한쪽에 아린 슬픔이 몰려왔다. ‘뭐라도 하기 위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군인들. 다행히 건강하게 전역해서 모니터 너머의 그들을 방관하고 있지만, 과연 저 슬픈 현실을 온전히 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나는 단지 운이 좋아서 무사히 전역한 행운아가 아니었을까. 온 맘 다해 나라를 지킨 그들에게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뭐라도 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이다.

kukinewsr@kukinews.com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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