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29일 자신의 SNS에 '이재명의 웹 자서전' 세번째 이야기인 '뺨 스물일곱 대'를 게재해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이 후보는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길가에 코스모스를 심는 환경미화작업을 했다. 나는 엄마를 도와 땔감을 해오고 밭일을 하느라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내 사정은 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선생님의) 손바닥이 내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미화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맞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맞으면서도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이 맞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그날 선생님에게 뺨을 27대 맞았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덤벼야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 초등학교 성적표 행동란에 이런 게 적혀있다. 칭찬하는 말 뒤에 달라붙은 한 마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며 "무엇에 덤빈다는 뜻이었을까? 무턱대로 도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 때문에 더 빨리 자랐고 더 빨리 세상을 알게 됐다. 가난이 죄가 아닐진대 가난하다고 겪어야 했던 부당함이 있었다"며 "어린 마음에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예민하게 반응했던 듯하다. 부당함에 대한 민감도가 남달랐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시절을 회고하면서 '싸움닭' '파이터' 등 현재의 강한 이미지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 후보는 "아버지가 성남으로 떠난 뒤 어머니 혼자 우리 남매들을 키웠다"며 "어머니는 화전을 일구거나 남의 밭일을 해주고 좁쌀, 보리쌀을 받아왔다. 그 보리쌀도 자주 부족해 겨를 얻어다 겨떡을 쪄먹었다"고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이어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간 적 없다"며 어린시절 학교에서 챙겨오라는 나는 준비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몸으로 때웠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학교의 요구나 지시를 상습적으로 어긴 나는 매를 맞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화장실 청소로 대속했다. 엄마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입당 후 이른바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듯 "인싸(인사이더)에 낄 수 없는 아싸(아웃사이더), 주류가 아닌 비주류. 내 비주류의 역사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고 말했다.
이를 본 이 후보 지지자들은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해당 게시글에 지지자들은 "부당함에 대응하는 올곧은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결핍이 절실함과 진정성 있는 실천을 믿는다" "모진 경험을 통해 얻은 공정과 평등의 가치, 소중하게 느껴진다" "역경 속에 희망을 찾아오신 삶 존경한다" "그런 아픔들이 오늘의 강하고 똑 부러지는 이재명을 만들었다" 등 응원 댓글을 올렸다.
비판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일부 누리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그때 당한 모욕감으로 사회에 보복하려는 건가" "감성팔이 하나" "가난이 죄도 아니지만 자랑도 아니다" "어린시절 가난은 인정하나 20대 사법고시 패스 이후는 기득권 그룹 아닌가" 등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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