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저체중이지만 만족이 안돼요. 군살 하나 없는 몸이 되고 싶어요. 쇼핑몰 사이트에 올라온 강아지 옷처럼 작은 사이즈 옷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부작용을 경고하는 글을 아무리 봐도 바디프로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20~30대 사이에서 ‘바디프로필’(body profile) 촬영이 인기다. 바디프로필은 수개월 동안 고강도 운동과 식이요법을 거쳐 몸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문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을 말한다. 30일 기준 MZ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바디프로필’을 태그한 게시물은 270만건에 달한다. 유튜브에서는 ‘다이어트 브이로그’가 넘쳐난다. SNS에서는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진행하는 다이어트 용품 공동구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디프로필의 유행은 극단적 다이어트의 문턱을 낮췄다. 바디프로필 촬영을 준비 중인 박모(20.여)씨는 지방 흡입 수술을 고민 중이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빈혈이 심해졌지만 살을 1kg이라도 더 빼는 것이 더 급하다. 박씨는 “많은 유명 유튜버들이 이미 엄청나게 마른 상태인데도 지방 흡입 수술을 받는다”면서 “수술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지방 흡입 수술뿐 아니다. 더 쉽고 빠른 체중 감량을 위해 극단적인 단식, 설사약이나 식욕억제제 등 의약품 복용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다이어트를 멈췄다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어김없이 요요현상이 찾아온다. 결국 더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보건복지포럼 9월호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외모관리를 위한 12가지 건강을 해치는 행동(하루 1끼 먹기, 24시간 굶기, 원 푸드 다이어트, 비처방 약물 복용, 설사제설사약/변비약 복용, 식사 후 구토 등)을 경험한 적 있는지 묻는 질문에 여성은 평균 3.7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남성은 평균 2.4번이다.
혹독한 다이어트로 만든 몸을 찍은 사진을 경쟁하듯 올리고, 다이어트 경험담을 나누는 SNS상 현상은 여성에게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박모(21·여)씨는 “SNS에 올라오는 예쁜 여성은 모두 하나같이 깡말랐다. 내 몸을 혐오하게 됐다”면서 “살이 찐 것 같다고 느낀 뒤부터는 거울을 보는 것조차 싫었다. 좋아하던 쇼핑도 하지 않았다. 결국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질병관리청에서 지난해 실시한 제 16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여자 청소년 42.3%가 최근 30일 동안 체중 감소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차모(21.여)씨는 “정확히 언제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생각해보면 중고등학생부터 늘 다이어트 중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 보다 신체이미지 왜곡 인지율이 높다. 지나치게 마른 몸을 이상적인 기준으로 설정하는 경향도 보인다. 이는 결국 체중 감소를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로 이어진다. 서울특별시가 진행한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스스로를 비만으로 인식하는 여성의 비율이 30.9%, 남성이 13.6%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9월호에 따르면 10대 여성 53.1%와 20대 여성 47%가 ‘외모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불안하다’는 설문에 ‘(약간+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자기관리로 시작한 다이어트는 몸과 정신을 황폐화한다. 20대 여성 절반 가까이가 영양 불균형을 겪고 있다. 질병관리청에서 지난 2019년 진행한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대 여성 중 에너지를 부족하게 섭취하는 비율은 45.8%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거식증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총 8943명으로 이중 여성은 6756명(75.5%), 남성은 2187명이었다. 이 중 10대 여성은 1296명(14.5%)으로 연령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같은 기간 신경성 폭식증으로 진료 받은 인원은 총 1만641명으로 여성 9903명(93.1%), 남성 738명(6.9%)으로 나타났다. 폭식증 환자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대 여성은 4696명인 44.1%로 나타났다.
식이장애는 강박증,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복통, 피부건조증, 부정맥 등 다양한 신체적 질환을 유발한다. 거식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으로 사망률은 최대 15%에 달한다.
정고운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 사회는 남들에게 자신을 전시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연출해야만 하는 시대”라며 “개인이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기 쉬운 구조다. 비현실적으로 이미지화된 몸을 접하는 통로가 많아졌다. 몸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결국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압력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유비취 객원기자 gjjging@naver.com